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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Feb 13. 2024

손만 대면 고장 내는 주부

결혼 횟수에 비례하지 않는 살림 재능은 누구의 잘못인가

아이들이 어릴 때는 결혼 혼수로 장만해 온 주방 식기들을 몽땅 주방 수납장 안에 모셔두고 어떤 외압이 들어와도 절대 깨지지 않는 알록달록 플라스틱 식기만 사용했다. 플라스틱 식기가 건강에 좋지 않다 해서 사용을 꺼리며 사용하지 않는 분들도 있지만 대개 꼬맹이들 키우는 집의 주방은 대부분 우리 집과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내 살림살이 공간에 아이들 물건들로 채워졌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들어간 뽀로로 컵과 식기 세트, 자동차와 로봇이 그려진 하늘색 식기 세트로 차곡차곡 선반에 진열되었다.  


흰색으로 통일되어 깔끔 그 자체였던 주방은 알록달록 화려한 돈키호테 백화점으로 변해갔다. 신혼 초 집을 근사한 레스토랑처럼 꾸미고 우아하고 품위 있게 식사하고픈 로망이 있어 결혼 전부터 취미로 잡지 속의 유명한 냄비 세트, 접시 세트를 수집했었다. 그러면 뭐 하나. 어디에도 올려놓아도 어울리지 않으니 사용하기도 민망하여 다시 수납장으로 직행했다. 옛 어른들 말씀 중 '아끼다 똥 된다'라는 말을 믿지 않았는데 살면서 자연스레 터득했다. 쓰기 아까울 만한 것은 사지 않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유행도 한때라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복작복작 살면서 유행, 패션, 스타일과는 동떨어졌다. 현실, 실용을 추구하는 삶을 살면서 그동안 허영심이 가득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기였던 아이들이 말을 배우고 유치원에 다니며 기본 생활 습관을 배워 점점 사람처럼 행동할 때쯤에야 수납장 안에 묵혀뒀던 주방 식기들이 나올 수 있었다. 10년 넘게 음지 속에서 빛을 발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빛나고 나의 품위를 지켜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내 손이었다. 그동안 내 손이 아기들 키우느라 거칠어진 것인지 살림에 한계가 온 것인지 매일 저녁 하나씩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수저 받침대나 티스푼, 포크도 하나둘씩 사라졌고 설거지하다 툭 놓친 컵은 보란 듯이 이가 나갔다. 이 나간 컵을 좋아하는 나라도 있다지만 우리나라는 이 나간 식기를 사용하면 큰일 날 듯 민감하게 반응한다.  식당에서도 이 나간 식기에 음식이 담겨 오면 금방 바꿔달라고 한다.










살림 고수는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되는 줄 알았는데 더 못하는 것이 늘어났다. 남편 보기 부끄러워 감쪽같이 숨겨놓으면 귀신같이 찾아들고선 여자가 왜 그렇게 손이 거치냐면서 한마디 거든다. 불쑥 화가 솟구치다가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집 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희한하게도 내가 만지면 고장이 나는 걸 알았다. 잘 되던 프린터도 잉크만 충전해도 작동이 안 되고, 베란다 블라인드도 말려서 내려오지 않고, 컴퓨터도 잘 되다가 귀신같이 켜지지 않거나 느려지기 일쑤다. 수시로 서비스센터에 가야 한다는 귀찮음이 있다. 그것을 우리는 가시 손이라고 하는데 내 손이 그랬다.


이래 봬도 디자인 전공한 귀한 예술가 손이었는데 과거에 화려함은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결혼 전 집안 살림을 하지 않아서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결혼하고 나서 재발견한 내 특기인지 모를 일이다. 때로는 가시 손이 무기가 되어 남편이 집안 살림을 많이 도와주는 게 장점이었다. 속으로 뭉그러진 남편은 물건 또 고장 내키면 새로 장만해야 하니 시한폭탄이라고 생각했다. 종종 무안한 일이 생길 때마다 내 손을 탓하며 점점 살림과 거리를 두고 멀리했다.


결혼 20년 차임에도 잘하는 요리가 없는 나는 베테랑 살림 고수가 아닌 글쓰기 고수가 될 것이다. 그럴싸한 요리도 하지 못하고 밥을 잘 못 지으니 단어와 어휘를 혼합하여 맛있는 문장이라도 잘 지어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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