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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Feb 26. 2024

모델하우스 같은 집에 살면 행복할까

지난 주말에 남편 친구네 부부와 저녁을 먹었다. 갑작스러운 약속이었지만 정말 오랜만의 만남이라 반갑고 설렜다. 한동네로 이사 와서 산지 10년이 지났어도 살아온 횟수보다 두 부부가 만나서 식사를 한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 그 부부의 자녀들은 중고등학교 학부모였으니 만나도 공통 관심사는 많이 달랐기에 몇 번의 골프라운딩이 다였다. 지금은 우리 아이들은 중학생이고 그들 부부의 아이들은 직장인에 입대를 앞두고 있다고 했다.


그 와이프가 나와 동갑내기 친구여도 자녀의 나이에 따라 삶의 질은 천지 차이였다. 내가 아이들과 종종거리며 뒤따라 다닐 때, 그 친구는 요가에 헬스까지 다닐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현재 두 아이는 모두 분가해서 자취를 하고 있고 직장생활까지 한다고 했다. 그들에 비해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 우리와 복작거리며 격동적인 사춘기를 보내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아~ 세월이 흐른 탓일까. 아니면 생각이 바뀐 탓일까 나도 그녀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 엄마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내 던져 버리고 지극정성으로 아이들 뒷바라지를 한 결과 두 아이를 모두 명문대(인서울)를 졸업시키고 유유자적 당당했다. 역시 아이를 잘 키우면 엄마들이 어깨에 뽕이 들어간다는 말이 맞는 말이었다. 갈수록 사교육시장이 들끓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며, 부러운 반면 과연 나도 할 수 있을까 의문은 들었지만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다. 돈도 돈이지만 나의 꿈은 '엄마'가 되는 거였는데 7년 만에 이뤘고, 사계절을 온몸으로 만끽하며 행복한 집에 사는 게 꿈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우선 행복해야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문답을 하며 점점 내면 깊은 곳에 녹아져 있는 설움, 분노, 욕망 등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 감정들을 잘 다스려야 했다.


고백컨데 그동안 헬리콥터맘이었다. 그리고 갈대처럼 바람대로 흔들리며  한없이 나약했다. 어렵게 아이를 가진 만큼 귀하게 흙먼지 닿지 않게 키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귀하게 키운 만큼 아이는 나약하며 이기적으로 자란다고 주변에서 뭐라고 해도 곧이듣지도 않았다. 내게는 아이가 내 목숨보다 소중했으니까.


책을 통해 깨달았다. 아이는 내 소유물이 아님을 나를 대변해줄 마루타가 아님을. 나의 욕심으로 아이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티 나지 않게 조금씩 아이를 옭아매두었던 끈들을 하나씩 풀어헤쳤다. 해방시키고 나서야 아이들은 자유로워지면서 밝고 명랑하게 자랐다. 그렇다고 아이를 나처럼 키우라는 법은 없지만 엄마는 아이를 가장 잘 알기에 아이를 위해 더 내 욕심(욕망)를 내려놓아야 한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무던히 애썼던 나였다. 하지만 나를 알아야 상대가 보이듯 독서를 하면서 '뭣이 중헌데'를 깨닫게 되었다. 틈나는 대로 나를 더 찾아보겠다며 짬짬이 독서하고, 글 쓰며 모습이 내 욕심만 챙기는 거 같아 흠칫 부끄럽기도 했다. 유난스럽게 아이를 가지면 모든 엄마들이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지만 아이들마다 부모 욕심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수없이 마음을 절제하고, 다독이며 아이들의 행복이 우선으로 여겼다.


과한 사교육을 시키지 않고 경험을 많이 할수 있는 학습 위주로 교육을 시켰다. 내가 욕심을 내려놓을수록 아이들이 자주 웃으며 행복해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다른 친구들과 비교되는 것을 아이들도 먼저 알아차렸다. 공부하면서 자신과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일에는 때가 있기에 기다려주고 있는 중이다. 혹여나 그때가 너무나 늦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야기 도중에 그들 부부는 20년 살던 집을 두 달 동안 리모델링했다고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을 했다. 뭐든 최고로 가구, 가전, 자재로 뼈대만 그대로 놔두고 몽땅 배치부터 흔들어서 바꾸었다고 했다. 남편말로는 새로 집을 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인테리어 하는데 들어간 비용이 어마어마하다고 들었다고 한다. 남편이 보기에는 리모델링한 집보다 금액에 더 마음이 갔는가 보다.


여자에게 있어서 과연 '집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쉬는 곳, 편안한 곳, 아늑한 곳, 화려한 곳, 행복이 샘솟는 곳, 재미있는 곳 등등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집은 그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의 취향이 묻어있고 존재하는 사람들이 소유한 것들로 모여있는 가치 있는 곳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뭐 하나를 들여도 심사숙고해서 집안에 들여놓고 생이 다해 처분하게 될 때 큰 이별의 고통을 겪는다. 그렇듯 남자건 여자는 내가 사는 집에 대한 욕망이 짙게 드러낸다.


나라고 여자 아닌가, 예쁜 집, 호텔 같은 집, 모델하우스 같은 집에 살고 싶기에 부럽다며 여러 번 탄성을 질렀나 보다. 그러고 보니 아차 싶었다. 옆에 있던 남편이 괜한 소주를 들이붓는 느낌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모델하우스 같은 집이 부럽긴 했지만 내가 살기엔 너무 어울리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내가 살고 싶다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남편은 스스로 자책하고 그렇게 해주지 못하기에 비관했는지 술을 마시듯 넘겼다. 20년 넘게 부부도 이럴 때는 난감하다. 또한 나이 들수록 남편이 자주 삐친다.


엎질러진 물처럼 내가 지른 탄성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그녀가 핸드폰으로 자랑하듯 보여주는 욕실, 주방, 거실, 붙박이장을 보고 공감을 안 해주기는 더 이상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여자들은 가끔 나도 모르게 죽을 맞추고 있는데 좀생이 남편은 상처가 됐는지 그날 저녁 집에 돌아가서가 문제였다.


다행히 많이 취한 남편은 곧바로 잠들었다. 잠이 오지 않고 가슴 한편이 서늘했다. 사람 사는 게 모두 다 똑같다고 해 놓고 모델하우스처럼 고가로 집을 꾸미고 살면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냥 잡지에서나 보는 보물지도에 오려 붙였던 게 생각이 났다. 꿈꾸면 이루어진다고 언젠가는 미니멀라이프로 일상의 살림들을 모두 버리고 살면 모델하우스는 될 것이다. 아니면 지금 이 집에 살면서 가끔 기분전환으로 호캉스나 풀빌라로 휴가 다녀오면 그만이지 하며 나를 위로했다. 사실 좋은 집은 내게는 사치다. 집안에 수천 권의 책을 끌어안고 있으면서 모델하우스처럼 해놓고 살고 싶다니 언감생심이었다. 물건 쟁여놓는 습관이 있어서 수집광이었다. 뭐든 하나 살 것도 여러 개 사둬야 마음이 편하고, 의미 있는 것을 버리지 못했다. 그 마음부터 정리하면 호텔 같은 집은 당장 가능하니까.


차라리 요즘하고 있는 정리, 비우기 프로젝트를 열심히 하여 공간을 많이 넓히기로 했다. 책도 더 비우기로 하며 모델하우스 같은 집은 보기만 위한 것으로 정리했다. 내가 살 곳은 내가 소유한 물것들로 채워진 곳이 가장 아늑하고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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