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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Mar 04. 2024

생일 뭐 대수라고

딸의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

오늘 아침인가 밤 12시가 지나면 새 날이니 딸아이가 "엄마 생일 축하해~~"라고 말하며 볼에 입맞춤을 해줬다. 12시가 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12시 땡이 지나자마자 딸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와서 놀래켰다. 남편과 약속이라도 했는 듯이 딸과 거들어서 우리가 다른 누구보다 생일축하를 먼저 해줬다며 딸아이와 남편은 서로 자신이 먼저 생일 축하를 해줬다며 오밤중에 난리 부르스다.


우리 집은 생일날이면 미역국과 생일 축하한다는 말이 전부다. 주변에 보면 아이들도 편지를 준비하거나 선물을 준비하는데 도통 어찌 된 일인지 우리 아이들이나 남편은 아무런 준비가 없다. 신혼 때 늘 꽃바구니를 주면 비싼데 이런 걸 주냐고 차라리 현금으로 달라고 타박했던 내가 싫어진다.

그렇다고 내가 가족들 생일에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꼭 선물을 미리 주는데 그들은 당연하게 생각했는지 언제나 받기만 하고 줄 주는 모르는가 보다라며 내심 서운했다.


진심으로 '난 괜찮아'라고 말한 게 아니었는데  세 번 묻지도 않고, 언제나 괜찮다고 생각하는 듯하여 조금은 생색도 내고 어름장도 놓아야 한다고 후회됐다. 문제는 우리 엄마와 아빠다. 시부모님은 미리 생일이라며 몇 주전부터 봉투를 보내왔는데. 딸 생일이 언제인지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사는 친정부모님이 남편에게 약가는 창피하다. 한두 번도 아니고.


나이 들면 오늘이 내일 같고 내일도 어제와 같기에 그날이 그날 같다고 하지만 어찌하여 막내딸 생일은 언제나 잊어버리는 걸까. 자식이 많고 손자손녀가 많아서라고 이해하려고 하다가도 살짝 핀토가 상한다. 큰 딸과 큰 아들은 살뜰히 챙기면서 말이다.





사실 친정엄마는 노치원(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시는 것을  언제나 감사하게 생각했다. 오늘도 마침 노치원에서 하원할 시간에 맞춰서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맑고 행복한 목소리로 "사랑하는 우리 막내딸~~"하고 부른다. 노치원에 다니면서 말 끝에 항상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붙인다. 내가 딸이어도 말이다.

엄마에게 전화를 건 이유는 막내딸 생일도 어떻게 잊어버렸냐고 타박하려다가 내 마음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에 사르르 녹아버렸다. 더군다나 엄마는 미안해하지도 않고서 더 보태서 "막내사위가 생일선물 좋은 거 사줬지?"라고 물었다. 엄마는 생일도 잊어버려도 남편에게 생일선물 받아야 한다고 꼭 챙기라고 했다. 이상한 논리였다.


하루가 다르게 엄마는 해마다 어른의 모습에서 어린아이처럼 변해갔다. 어쩔 때는 얼토당토않은 억지이야기로 당황케 하지만 또 어쩔 때는 너무나 옳고 그른 이야기를 하셔서 놀라게 한다. 엄마와 전화 통화를 마무리하면서 "딸!! 건강이 최고야~~"라면서 "밥 많이 먹어"라고 하면서 전화는 끝이 났다.





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밥 많이 먹으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 친정에 일 때문에 들러도 제일 먼저 묻는 말은 "밥 먹었어? "였다. 밥 많이 먹어야 해? 밥심으로 살아야 한다며 밥, 밥, 밥을 노래하면 나는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모른다. 제 때에 밥도 못 챙겨 먹을까 봐 노심초사했나 보다. 밥도 못 먹던 시절을 겪으며 살았던 엄마는 시집간 딸이 밥을 굶고 살면 어떡하지라는 염려가 기억이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도 너무 깊은 내면의 뿌리내렸나 보다. 무의식 중에도 밥타령을 하는 것을 보니.


예전의 엄마는 밥을 참 맛있게, 복스럽게 드셨다. 연세가 드시고 큰 병을 앓고 나면서는 한 숟가락도 제대로 크게 못 떠서 드시고 밥알을 하나하나씩 세면서 드시듯 입을 모아서 오물오물 씹으시는 모습이 짠하다. 예전 쪼글쪼글한 진짜 할머니가 먹는 모습이니까. 너무 닮아서 화가 난다. 어린 시절 할머니방에서 자란 나는 할머니가 친구이자 엄마였다. 갈수록 할머니처럼 엄마가 닮아가서 너무 속상하다.


엄마 또래의 할머니들을 보면 그 모습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당연한 일인데 왜 나는 젊고 아름다웠던 엄마의 모습이 잊혀 가는 게 싫어서 오히려 엄마에게 화를 내다. 얼마나 더 후회를 하려고 말이다.


엄마가  곁에 계신것만으로 감사해야하는데 호강에 겨워 요강을 두드린것 같아 미안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다시 전화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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