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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Mar 21. 2024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토록 애탔던 적이 있었던가?

언제나 '느리다', '느긋하다', '너그럽다', '느슨하다', '느릿느릿하다', '여유 있다'라는 동사들이 나를 대변했었다. 그런 동사들이 싫지는 않았고 내 성격 탓이라고 받아들였다. 성격이나 기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이런 성향을 고치려고 노력한 적도 없었다.  불리한 일을 많이 겪으면 개선하려고 노력하기 마련인데 느려서 안 좋은 점도 많았지만, 생각해 보니 느려서 득 되는 일도 많았다. 어찌 보면 강점과 약점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함께 따라다녔다.

 

남편은 급한 일인데도 전혀 급하지 않게 일처리를 해서 상대를 속 터지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고 푸념했었다. 살아온 세월이 40년 넘게  품어온 가치관 때문인지 느리고 빠른 것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큰 지장은 없었다.


그랬던 내가 요 며칠은 심기가 불편하고 불안정 그 자체다. 인터넷접속이 불안정할 때처럼 생각이 복잡하니 해야 할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한 가지 일이 끝나기 전에도 다른 일을 시작하는데 별로 어려움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3년간 쓴 원고가 내 손을 떠나 출판사에 넘어갔다. 다시는 정정할 수도 없었다. 까마득한 어둠을 뚫고 흐릿하게 날이 밝아오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온통 '투고'였다. 느긋하게 마음먹으려 해도 계속 눈은 시계를 향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성격이 급했던 사람처럼, 변덕쟁이처럼 보고 또 보고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했다. 


나 혼자만 마음이 급했다. 이제까지 정리하지도 않고 열어보지도 않았던 이메일을 정리하고 깨끗한 방으로 맞을 사람처럼 정리했다. 이런 내 행동이 부자연스럽고 낯설어도 개의치 않았다. 디데이로 정해진 오늘 아침 출판사에 투고를 하겠다는 대표님의 연락을 듣고부터 제정신이 아니었다. 첫 번째로 한 행동이 설마 메일함이 꽉 차서 전송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 했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메일이 꽉 차서 전송이 안될까라며 코웃음을 쳐보지만 그만큼 속이 탔다는 의미였다.


시간은 왜 이리도 더디게 가는지. 울리지도 않는 전화벨을 여러 번 확인하고 평상시에는 진동으로 해놓던 휴대폰의 알림을 소리로 변경했다.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는 전화와 기다리는 이메일이 있다는 말이다. 상대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저 나를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제발 내가 먼저 내민 손을 잡아주길 나와 결이 맞는 출판사가 나타나길 고대했다. 부디 오늘이 저물어가고 있지만 나는 기다려볼 참이다.


그동안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은 기대와 설렘 그리고 두려움이 따른다더니 이미 알면서도 떨리는 것은 왜일까. 그러고 보니 새롭게 적응하는 직장, 학교, 관계, 장소, 사람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어쩌면 매일 새로운 하루를 선물 받아 낯선 길을 가는 여행이었다. 누가 나의 경험을 책으로 엮게 될지 알았겠는가. 책 쓰기는 도전이자 새로운 경험이기에 선물이었다. 여기서 '선물'은 나를 성장하게 하는 '문제'였다. 문제를 피하기에 급급했던 젊은 날들이 나를 한 뼘 성장시키기 위한 선물이었다.


오늘 받은 선물도 느긋하게 '나답게' 기다려볼 참이다. 두 손 모아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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