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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Mar 26. 2024

나는 빨대수집광이었다

갑분글감 쓰기 빨대

첫아이를 낳아 모유수유를 완모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무조건 모유수유를 한다고 말했지만 밤중 수유가 너무 힘들어 혼합 수유를 하려고 무한반복으로 시도다. 그럼에도 아이 날 닮아서인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모유와 분유를 혼합하지 않겠다는 각오였는지 젖병거부를 했다. 어쩔 수 없이 젖병을 빨지 않아서 혼합수유를 포기하고 이유식을 할 즈음에 물을 먹어야 해서 빨대컵에 대해 공부했다. 빨대컵을 고르는데도 여러 번이 시행착오가 있었고 쉬운 일은 없었다.


아무거나 덥석덥석 받아먹는 아이가 아니서 그런지 빨대컵을 처음에 입에 물렸을 때 감촉을 느끼더니 퉤~ 뱉어버리고 빨대를 다시는 물지 않는 거다. 그렇게 실패한 빨대컵이 한두 개가 아니어서 지쳤다. 태어나자마자 아이의 주식이 모유이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빨기 때문에 빠는 것 자체가 힘이 좋다고 들었는데 내 아이는 남달랐다.  마트에서 종류별로 사보았지만 단번에 아이는 거절했다. 쪼그만 게 뭘 아냐고 하겠지만 그 당시는 심각했다.


그 당시 육아는 삐뽀삐뽀 119 두꺼운 육아서를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전과처럼 열심히 공부했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엄마는 마트를 뒤지는 것이 아니라 임신 카페를 뒤져서 필요한 육아 정보를 얻었다. 다양한 개월 수에 맞는 빨대컵을 자랑하듯이 리뷰한 글을 보면서 어떤 것이 좋은지 쥐 잡듯이 뒤졌다. 가격도 적당해야 하고, 사용 개월도, 교체가능한 빨대인지 아주 치밀하게 검색해서 구매했다. 문제는 아이가 그 빨대컵만 이용해서 하나로는 부족했다. 아기 때는 알다시피 마시는 것 자체를 못하기 때문에 숟가락으로 떠 먹여 보기도 하고 집에 있는 일회용 빨대를 종류별로 모두 실험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예뻐한다고 역시나 내 아이는 특별했다. 그 어떤 빨대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줘도 물이나 우유, 주스를 빨않고 모두 내뱉어버리는 거다. 어쩌면 빨 수는 있는데 먹기가 싫었는지 옷까지 다 버렸다. 무슨 일인지 딱딱한 플라스틱 자체를 입에 대는 것조차 싫어했었다. 어쩔 수 없이 비싼 일제 빨대컵을 하나 더 들여서 집에서 쓰는 것과 외출용으로 사용했었다. 남편은 여자 하기 나름이라더니 아이는 엄마 하기 나름인 줄 알았는데 결코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존재였다. 무작정 울고불고 자지러지면 이길수 밖에 없는 승자였다. 아이가 선택한 방법은 액체것을 모두 거부하고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든 쉬운 일은 없다고 육아는 할수록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대략 난감이었다. 양육자인 엄마가 이끄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꼬맹이 아이에게 끌려다니는 꼴이었다. 그렇게 전쟁처럼 아이는 자라서 어느덧 돌잔치를 하고 문화센터 수업을 다니면서 조금씩 사회에 물이 들었는지 종종 사제 빨대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빨대수집이 시작됐다. 우표수집도 아니고, 도자기 수집도 아닌 내 취미가 빨대수집을 하게 될 줄이야 아무도 몰랐다. 일단 집으로 배달되는 아기 우유를 신청했더니 빨대 한 뭉치를 바구니에 몇 개나 넣어주었다. 덤으로 요플레 스푼까지 말이다. 너무 얇고 가벼워서 컵에는 꽂아서 쓸 수 없어 용도는 딱 한 가지 요구르트와 200미리 우유만 사용할 수 있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빨대 규격도 자연스럽게 커지고 길어졌다. 그 후로 극장에 가서 아이들 영화를 볼 때면 팝콘과 콜라를 먹을 때 사용하는 빨대를 한 주먹씩 가져와서 수집했다.  더구나 커피숍에 가서 커피를 포장으로 구매해도 빨대를 한 주먹 챙겨 왔다. 가져온 빨대를 차 안에도 비치해 두고, 집안 주방에도 비치해 두는 필수품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 남편 왈~~

"그까짓 빨대 얼마나 한다고 그렇게 모으냐"라며 구시렁 거렸지만 주부라면 한 번쯤은 나와 같은 행동을 했을 거라며 합리화까지 하며 우겼다. 솔직히 한편으로 미안함이 올라온다고 해야 할까. 하나만 사용해야 했는데 한 주먹 가져온 나의 행동에 죄의식까지 올라왔다.


참으로 인정할 것이 글쓰기는 자기반성이라니 사장님의 입장이었다면 얼마나 화날 일인가 싶어 사죄드리고 싶다. 플라스틱 빨대가 인체에 그렇게 해롭다는 사실이 뉴스에 나오면서 친환경빨대가 나오고 심지어 빨대를 사용하지 않는 음료컵이 생겨나고 있다. 그때 어린아이도 자라서 빨대 없이도 마실 수 있는 학생이 되었다.

돌이켜보니 빨대를 아낀다고 생각했던 게 아끼는 게 아니었다. 주부의 얄팍한 잔머리에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용기 내서 고백해 본다. "미안했어요. 사장님."





#라라크루  #7기

#갑분글감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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