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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Apr 19. 2024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그날

아름다웠던 순간과 행복했던 순간, 기뻤던 순간, 경탄스러웠던 순간, 참으로 많은 순간들이 떠오르며 눈을 감고 지긋이 떠올려 보려 더듬었다. 마침내 지나왔던 순간들이 하나씩 퐁퐁 튀어 오르며 눈물겹게도 그 순간들이 그리워졌다.



 그럴까?


지금 이 순간에 행복인데 굳이 과거로 여행을 떠나고 있다니 서글픔이 안개처럼 밀려왔다. 왜 지금 마주하는 순간들에게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시간이 흘러 흘러 과거를 더듬어야 '아~ 그때가 행복했었구나'라고 느낀다.


행복은 각자의 감정이라 그렇다.


매일 똑같이 떠오르는 태양에 행복하고 감사할 수 있지만 어떤 날은 그 태양이 지겹도록 미울 수도 있는 데는 그날의 감정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날로 돌아가기 위해 기념일들을 떠올려봤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순백색 웨딩드레스를 입었던 결혼식 날이다.

특별한 날은 쉽게 잊히지 않아서일까. 가장 주인공으로 빛나는 날이었다. 하얀 턱시도를 입은 남편 덕분에 우리는 한 쌍의 백조 같았다.


어찌 보면 아름다웠던 순간들보다 내게는 경탄스러웠던 순간이 떠오르는데 벌써 16년 전의 일이다. 결혼하고 임신이 안 돼서 속상해하고 마음 아파하며 세상과 거리를 멀리하고 속세를 떠난 듯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살았다.


철두철미하게 내 마음을 숨기고 살아야만 내가 간신히 숨을 쉴 수 있었다. 내가 살기위해 겉과 속이 다른 열대과일처럼 철저하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살다보니 얼음보다 차갑게 무미건조한 사람으로 변해갔다.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워 외출도 못했고 땅굴 파고 아래로 아래도 들어갔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까워 그림을 배우러 수채화반에 들어갔다.

그림을 그리는 분들은 모두 나보다는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에 집보다 편안했다. 그렇게 오전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몇 개월을 쉬었다가 다시 난임병원에 다니면서 마음이 편안했는지 생각지도 못하게 임신이 되었다.  딴 데 정신이 팔려있던 찰나가 나를 살렸다. 별기대가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이 경이롭고 놀라운 순간,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 볼을 꼬집어 보기도 했는데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내 생애 그 어떤 순간보다 아름다웠던 순간은 그토록 기다리던 아이들을 내 품에 안았을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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