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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Apr 17. 2024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잘 키운다

책을 만나 인생이 달라졌다

하루의 시작을 독서로 시작한 지가 벌써 5년이 흘렀다. 그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점이다.


어떤 날은 이불속을 나오기 싫어서 특히 비 오는 날이 그렇다. 왜 일기예보에 따라 그날의 기분도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기복이 심한 건 나만 느끼는건지 궁금하다.


어둠 컴컴하고 묵직한 새벽에 눈을 뜨면 더 이불속을 파고들어 잠을 청하다고 싶어질 때도 많았다. 때론 알람 소리를 끄고 일어나지 못하고, 5분만 더를 외치다 허둥대는 아침을 맞는 날도 있었다. 참 불규칙적이고, 불완전하고, 무작위적이었던 나였다.


전업주부가 되니 하루 종일 눈치 볼 사람도 없고 아이들만 잘 키우면 된다는 책임감에 불타올랐다. 아이가 내 품으로 들어온 후로 세상의 전부를 가진 것처럼 온종일 아이와 모든 일상을 함께했다. 나라는 존재 그 자체를 잊고 살았다.


남들은 엄마가 되면 알맹이가 쏙 빠진 빈 쭉정이 인생이라고 하지만 그런 '엄마'가 얼마나 되고 싶었는지 모르기에 하는 말이라며 분노가 치밀었다가 간신히 침을 삼키고 가라앉혔다.







점점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정에 평안과 행복이 지키기 위해서는 남편 내조와 육아에 전념하는 일이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보고 자란 가정환경이 중요하다고 어느덧 친정엄마처럼  닮은 꼴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내 능력과 시간은 그대로 멈춰있었다.  


꿈 많고 야망이 컸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갈 길을 잃은 배처럼 둥둥 떠다니는 존재로 남겨진 거 같아 서글퍼졌다. 아무리 친구가 많아도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고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나눌 친구조차 없었다.


가족만 바라보고 헌신하겠다는 다짐했던 나는 이기적 이게도 내 능력이 잊히는 것이 싫었는지 배움터를 찾아 나섰다. 막상 오랜 시간 집에만 있던 터라 사회초년생처럼 낯선 사람이 있는 곳이 어색했다.



내 욕심대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의 엄마라는 이유로 돌봐줘야 한다는 책임으로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맞닥뜨렸다.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일이나 가족이냐를 고민하다 다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일은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나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엄마역할도 좋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조금이나마 가정경제에 도움이 되는 구성원이 되고 싶었다.


제일 먼저 한 것이 독서였다. 아이들이 키우면서 책을 읽는 일은 거의 동화책과 육아서가 전부였다. 문제는 내 시간을 고스란히 갖기가 어려워 새벽시간을 마련해야 했다.


수십 년을 새벽형 인간이기보다는 올빼미형으로 오래 살아왔던지라 수면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꽤나 용기 있는 도전이었다. 일부러 새벽독서모임에 들어갔다. 강제적이고 의무적인 시스템이 필요했던 찰나에 눈에 띈 독서모임에 모두 나와 같은 바람으로 들어온 분들이었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결이 맞는다고 해야 할지 서로 격려해 주고 칭찬해 주며 단단해졌다.





새벽독서를 하며 새벽시간을 누리다 보니 깨달은 점이 있었다. 매일 똑같은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을(오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저녁까지 일과를 계획대로 안정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가짐이라는 것이 중요했다.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에 매일 긍정 생각을 하고 매일 독서를 하면서 감사일기를 썼다. 함께 좋은 점을 나누고 함께 독서하자고 응원하고 글쓰기의 좋은 점을 알렸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은 통일한 것처럼 새벽 기상이었다. 그들이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쓰는 사람도 있고, 운동을 하는 사람도, 명상을 하는 사람 등 다양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24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먼저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조용하고 나만의 시간을 갖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새벽시간을 두 시간 확보하는 게 핵심이다. 새벽 기상하면서 바람직한 생활을 하며 점차 부지런한 새가 되어갔다.



하루아침에 새벽형 인간으로 변하기란 어려웠지만 나 자신이 조금씩 성장하고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나도 모르게 흐트러진 마음가짐도 다시 바로 세울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된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기대와 신념이 생기는데 '자기 효능감'이라고 한다.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은 내 능력이 된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여러 번의 실패가 발판이 되어 성공해도 절대 자만하지 않는다. 또한 실패했다고 해서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에게는 회복탄력성이 생겨서인지 새로운 시작하는 데 있어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거다. 그들은 시작과 멈춤의 귀재들이다.

평생직장 생활을 한 사람과 개인 사업체를 운영한 사람과는 마인드셋부터가 다르다.

내가 움직여야만 실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기에 부지런해지고, 계획형이고, 전략적인 사람으로 변했다.





책은 내게 말없는 친구가 되어주었고 응원군이 되어주었다. 내가 실수해도 떠나지 않았고, 질책하지도 않고 우직하게 기다려주었다. 자꾸 책을 읽다 보니 글이 쓰고 싶어 졌고 쓰다 보니 나를 돌봐주는 에너지가 되었다.


집에만 있는다고 해서 절대 우울할 시간이 없었다. 책에서 만나는 여러 명의 주인공을 만나야 하니 시간이 없었다. 책 속에서 만난 문장과 내용을 가족들과 나누면서 너그러운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다그치기보다는 내 일을 하다 보니 잔소리를 덜하게 됐다. 어찌 보면 아이들에게 자유를 준 셈이다.


자연스럽게 내 아이를 앞집 아이처럼 대했더니 아이들 스스로 자기 주도적인 아이가 되었다.

(사실 준비물을 못 챙겨주니 스스로 챙겨갔고, 일하는 엄마보다 더 바쁜 엄마라서 시간개념도 생겼다)






엄마인 내가 행복하게 잘 살아야 아이들도 잘 살 수 있다는 말을 믿는다. 행복하게 목표를 이뤄나가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면서 자란 아이들은 저절로 독립적인 존재로 나아갈 준비를 한다.


엄마가 이기적으로 자신의 일에 몰두하여 만족감을 느낄 때, 아이들도 덩달아 긴장을 풀고 하루하루 만족하며 살아가는 부모를 보며 자신의 인생을 알차게 꾸려나갈 고민을 하게 된다.


자식들에게 자꾸 뭔가를 더 해주려고 애쓰지 말고 나 자신과 배우자를 위해 애쓰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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