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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Oct 30. 2023

난임 부부는 소수다

난임부부로 산다는 것은


아기를 갖지 못하는 난임의 고통은 가족을 잃는 사별의 고통에 비교할 정도라고 하면 과장이라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하지만, 이 말은 내가 다닌 병원 주치의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난임은 겪어보지 않고서는 공감하기 어려운 차원의 고통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결혼 전까지 결혼하면 자연스럽게 임신하고 아기를 낳는 것이 마치 공식처럼 통과의례라고만 생각했다. 모두가 하는 임신인데, 설마 내가 소수의 난임 부부에 속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그러니 난임을 겪는 소수의 고통이나 아픔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을 리 없다. 막상 난임을 겪어보니 짐작할 수조차 없는 소수의 고통이 보인다.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않았으면서 지레짐작으로 타인의 인생을 쉽게 재단하고 평가하려 든다. 상처란 소수의 입장을 공감하지 않는 다수와의 시각차에서 발생한다. 




난임 부부에게 있어 무엇보다 힘든 일은 인간관계다. 시험관아기 시술을 하면서 몸을 망치는 일도 힘들고, 과배란 유도로 매일 내 배에 주사를 맞는 일도 힘들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든 일은 난임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만큼은 가슴에 콕 박혀 잊히도 않고 자리 잡고 있다. 




밖에서는 별일 없는 것처럼 평범하게 살아가지만,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만의 공간애 들어서는 순간 가슴에 눌러두었던 울분이 가슴을 치며 분수처럼 쏟아져 나온다."왜", "어째서 나에게 난임이란 어려움이 닥쳤을까".  몇 번을 묻고 따지듯 생각해도 답도 없고, 그저 스스로  받아들이려 애를 쓰지만 결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상처를 주는 사람도 다양했다. 남편, 시가, 친정, 친구, 직장동료, 선후배, 하물며 연락이 뜸했던 지인들까지. 사람들은 자신의 말이 상처가 되는지도 모르고 위로를 했고, 나는 그 위로로 인해 더욱 큰 상처를 안고 살아야만 했다. 당신의 그 말이 내게는 상처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어서 그게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다. 


덩그러니 저 멀리 혼자 떨어져 있는 느낌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사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외롭지만 어떻게든 버텨내야 할 지극히 개인적인 내 문제였을 뿐이다. 결혼한 친구들은 아이 없이 지내는 우리 부부를 부러워했지만 나는 그저 옥신각신 다투며 아이 낳고 사는 친구들의 삶이 부러웠다. 갖지 못한 것에 더 큰 동경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였다. 



육아 이야기로 넘쳐나는 친구들과의 채팅창과 개인 홈피에 끼지도 못하고 나오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내가 너무도 싫었다. 다행히 난임 카페에서는 나와 같은 고민이 공통으로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위로되었다. 



남편에게 속내를 털어놓으면 본인 속도 속이 아니겠지만 애써 남의 일 보듯 무심히 반응한다. 그나마 남편은 나처럼 인간관계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모임에도 자주 갔고 나처럼 움츠려있지도 않았다. 미혼으로 살아가는 친구는 한술 더 뜬다. 굳이 임신을 해야 하는 것이냐며 자기 인생을 즐기라는데 당신에는 그 말이 어찌나 서러웠는지 모른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와 남자는 결혼하면 무조건 애 낳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애 없이 사는 것을 정상이 아니게 느껴지고, 남의 허물이 이야기 소재가 된다. 비혼(싱글), 딩크족, 난임으로 살아가야 하는 세상은 모두 소수이고 듣기 싫은 염려의 말을 들으며 살아야 했다.


소수의 입장으로 살면서 자기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드러날 때마다 비참한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나도 모르게 친구들의 인생을 그대로 봐주지 못하고, 임신한 친구의 기쁨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지 못하는 속 좁은 내가 되어갔다. 난임으로 인해 친구 관계도, 인간관계도 덜컹대고 금이 가기 시작하고 신뢰감은 진즉에 사라졌다.


난임을 겪으며 다수로 살아오면서 소수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수 집단에 있다는 것은 의식하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은 소수의 입장을 모르고 산다는 것이고 특권이었다. 난임 고통으로 소수의 고통을 겪는다는 것이 나를 더 사려 깊은 사람으로 성장시켰다.



주변에 난임으로 고통받으며 사는 가족이 분명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음지로 숨어들었던 과거와는 달린 요즘은 난밍아웃, 임밍아웃이라며 자신을 공개하지만 극히 소수일 뿐이다.

모두 같은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따스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바라봐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그림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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