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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May 14. 2024

출판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닐까

무명작가의 출간 도전기

지난주에 출판사 대표와 미팅을 했다. 벌써 투고한 지 두 달이 넘어서의 일이다. 첫 투고를 하고는 문자와 이메일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확인했다. 오지도 않은 전화기를 붙들고 씨름했다. 수시로 전화기를 껐다 켰다 했다. 왜 그랬을까? 오지도 않는 전화를 기다리는 간절함을 애꿎은 전화기에 대고 화풀이했다.


2년 전 책 쓰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는 너무 만만하게 보고 시작했고, 무조건 쓰기만 하면 책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내 글이 좋지도 않으면서 그 자신감은 국보급으로 당당했다. 막상 퇴고에 퇴고를 반복하면서 내 원고가 책일 될까라는 두려움이 앞섰다. 내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가 없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일단 원고는 마무리 됐고 순차적으로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다. 그때만 해도 무조건 내가 출판사에 투고하면 금방 연락이 오고 문자가 올 거라는 착각을 했었고, 그 착각에서 빠져나오 데 두 달이 걸렸다. 출판 시장이 어느 때보다 불황이고 힘든 상황인 이 시기에 왜 책을 출간하려는지 자책했다. 남편도 왜 사서 고생이냐고 지금이라도 당장 때려치우라고 말렸다. 사실 책을 쓰겠다고 할 때도 관심을 1도 가지지 않았고 누가 네 책을 사주겠냐며 아픈 말을 던졌다. 그럼에도 남편말이 들리지 않아 시작했고, 모든 게 엎질러진 상황에 그 당시 남편이 던졌던 말들이 떠올랐다.






처음 하는 미팅이라 설레고 긴장돼서 배가 고프지도 않아 끼니를 걸렀다. 사실 잠도 못 자고 면접 보러 가는 취준생처럼 시간마다 잠에서 깨어 깊은 잠을 못 잤다. 얼마만의 긴장감인가. 심장이 두근거리고 계속해서 대표님이 내려오는 상황에 빗길 운전에 이상이 생길까 조마조마했다. 제발 비가 나중에 오면 좋겠다고 빌었다.

다행히 약속장소로 가는 동안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고, 하늘은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회색빛으로 살짝 어둡게만 해주고 차분한 날씨였다.


카페에 도착한 순간 대표에게 카톡이 와 있었다. 하얀 옷을 입고 있고 통통한 아줌마 같은 사람을 찾으라는 문자를 주셔서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첫 만남을 자주 가지셔서 그런지 세밀하다고 생각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서로를 금방 알아차렸고 눈이 마주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내가 알고 있는 대표들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관념화되었던 탓인지 조금은 여성대표의 모습이 소박하고 정감 있는 앞집 언니를 만나는 느낌이었다.  


커피와 케이크를 주문하고 나를 편안하게 해 주시는 대표님께 한없이 감사했다. 출판 세계에서는 이런 일이 흔한 일이겠지만 나처럼 무명작가에게 출판사 대표가 한걸음에 내가 사는 곳에 와준다는 말씀이 어찌 감격스러운 일이었는지 모를 것이다. 일단 내 원고를 채택하겠다는 마음일 거라 단정 지었다. 그러니 가슴이 더 쿵쾅거리고 뜀박질하는 심장을 가라앉혔다. 최대한 놀라지 않은 척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처음 이야기의 시작을 어떻게 질문을 할지 너무 고민하느라 밤 잠을 설쳤다. 그리고 수없이 내가 적어놓은 예상 질문과 답에 대해 적어놓은 메모장을 숙지했었다. 면접 보러 가는 사람처럼 긴장했다. 출판계약시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해서도 동기 작가분들에게 듣고 체크할 부분을 꼼꼼히 챙겼다.


워낙 사람을 그 사람이 좋다고 판단이 서면 다른 단점들은 아무것도 가려낼 수 없는 선글라스를 쓰듯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 조심조심하고 대표님의 말투나 제스처를 읽어내려고 애썼다.


일단 원고가 너무 좋다고 말씀해 주셨다. 대신 대표님이 전에 다뤘던 출판사는 대학 교재나 전공서적 등을 다루었고 에세이는 전에부터 해 보고 싶은 분야라고 하셨다. 내 원고로 받아보고 원하던 일을 다시 시작해 보고 싶다고 하셨다. 새로운 출판사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들으니 어딘지 모르게 내 마음에는 그림자가 다가왔다.


그런 내 모습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모든 작가라면 이름나고, 대형 출판사를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나를 위로해 주셨다. 덧붙여서 대신 내 디자인 전공과 내 원고로 같이 책을 잘 만들어 보고는 싶다는 의지를 밝히셨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긴 했지만 그것도 20년도 더 전의 일이고, 결혼하고 경단녀로 살면서 다시 그 일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는데 나와 책을 같이 만들어보자는 말은 너무나 큰 도전이었다.


지금 무명작가가 책을 쓰겠다고 도전한 것도 커다란 용기였는데 앞이 캄캄했다. 뭐라고 답변을 못 하고 쭈뼛쭈뼛하고 하고 있으니 대표님은 이야기를 전환시켰다. 내 원고의 이야기로 들어가서 주변에 난임을 겪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실감하셨고, 자신도 잘 몰라서 그들에게 상처를 준 이야기, 가족들 간의 에피소드가 가슴 아프게 다가왔고 그럴 수도 있겠다면서 깊이 공감했다고 했다. 위로라는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서로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듯 했다. 나도 나이지만, 출판사 대표님도 새로운 도전이기에 어쩌면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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