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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Sep 30. 2024

시험 전날, 게임하는 아들과 마주한 엄마의 속마음

영영 더위가 떠나지 않고 뚜렷한 사계절이 사라질 것 같더니 느닷없이 찬바람이 살갗에 스치니 어색했다. 따스한 가을 햇살이 베란다 창문을 통해 거실을 비추는 일요일 아침이 평온했다. 나는 남편과 함께 조용히 집을 나섰다. 늦잠 자는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뒤로한 채 스크린 골프연습장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주말 아침 골프는 우리 부부의 소소한 즐거움이지만, 오늘은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일이 아들의 중간고사 첫날이기 때문이다.


골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과 나는 순대볶음과 순대국물을 사들고 왔다. 

시험 준비로 지친 아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든든한 한 끼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대했다.

집에 도착하니 오후 12시 반이었다. 아들은 이제 막 일어난 듯 부스스한 머리로 거실에 나왔다.

"엄마, 아빠, 어디 갔다 오세요?" 

"아침에 운동 좀 다녀왔어. 배고프지? 순댓국 사 왔어." 

"네... 근데 시험 전날인데 왜 나가셨어요?"

순간 죄책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내 그 감정은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아들은 책상이 아닌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야, 아들아, 내일이 시험인데 컴퓨터는 왜 켰어?" "에이, 엄마도 참. 이번 시험 성적 내신에 반영도 안 돼요. 그리고 전 벌써 공부 많이 했고, 지금은 잠깐 머리 식히려는 거예요. 한 시간만 게임할게요."


아들의 당당한 태도에 할 말을 잃었다. 내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시험 전날 게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요즘 애들은 다 이런 건가?' 의문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들을 믿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내일이 시험인데 게임하는 건 좀 그렇지 않니?" 

"엄마, 저 진짜 열심히 했어요. 이제 머리도 식혀야 해요. "나 때는 말이야~ 하지 마세요."


아들의 말에 뒷목이 뻣뻣해졌다. '나 때'라니,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하지만 폭발 직전의 감정을 가까스로 누르고 심호흡을 했다.

"알았어. 그럼 한 시간만 하고 공부해야 해."

안방으로 들어와 남편과 눈을 마주쳤다. 우리는 말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지만, 이렇게까지 달라질 줄이야.






저녁 식사 시간,  아들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노크를 하고 들어가 보니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이었다.

"저녁 먹자." "네, 조금만 더 하고 갈게요."

밥을 먹으면서도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우리 아들만 이런 건지, 아니면 요즘 아이들이 다 이런 건지 궁금했다. 하지만 더 이상 뭐라 말하기가 어려웠다. '공부 그만두겠다'는 폭탄선언이 나올까 봐 전전긍긍하며 눈치만 살폈다.

잠자리에 들 무렵, 아들의 방을 다시 확인했다. 책상에 엎드려 잠든 모습이 보였다. 

순간 미소가 지어졌다. '시험 기간에 더 많이 자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침대에 누워 오늘 하루를 되새겨보았다. 내 불안과 걱정이 아이에게 과도한 압박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시대가 변해도 아이들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결국 우리가 바라는 건 아이의 행복과 건강한 성장 아닌가? 

시험 성적보다 중요한 건 아이와의 관계, 그리고 아이 스스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 부모의 노릇이 아닌가 싶었다. 앞으로는 아들을 더 믿고, 그의 방식을 존중해주려 한다. 

잠들기 전, 나는 작은 기도를 올렸다.

"우리 아들, 내일 시험 잘 보길 기도했다. 그리고 네 인생의 모든 시험에서 좋은 결과 있기를 두 손 모아 빌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부모로서 한 걸음 더 성장했다. 


세대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아이의 관점에서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 어른으로서 해야 할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부모가 해야 할 일임을 깨달았다.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대했던 것처럼 말이다.

시험은 앞으로도 더 많이 있을 것이고 시험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변함없이 부모와 자식 간의 이해와 사랑은 평생 계속되어야 할 테니까.

오늘 "미친*"이라고 말이 나올 뻔했지만 간신히 내뱉지 않고 잘 삼켰다고 스스로를 보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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