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수업 상실과 이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반신마비가 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친정 엄마가 25년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을 당시만 해도 왼쪽으로 마비가 오면서 언어에 문제가 있었고 왼쪽 다리를 절뚝거렸다. 말이 느려지고 발음도 새고 흐트러졌다.
수년간 물리치료를 받고 의학의 힘인지 몰라도 마비 증상은 사라졌지만 다른 허리 수술과 무릎 수술, 두통으로 고생하셔서 지금도 좌식생활을 못한다. 그럼에도 해맑게 잘 웃는 엄마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감사해할 줄 아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라고 우리 엄마가 감사하는 마음을 안다고 자신했다.
당신이 아름다운 정원에 앉아 있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고통 속에 있다면,
만일 당신이 상실을 경험한다면,
그리고 만일 당신이 머리를 모래에 묻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아주 특별한 목적으로
당신에게 주려는 선물로 여긴다면
당신은 성장할 것이다.
_인생수업 중에서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아름답게만 살 수 없다. 원치 않는 상실과 이별의 고통은 언제 일어날지도 모르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양가 노부모님께서 병원을 옆방에 드나들듯이 다닌다. 수시로 응급실에 가야 할 정도 심장을 멎게 하는 끔찍한 순간이 올 때마다 부모님을 잃게 될까 봐 두렵고 피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사람은 만나게 되면 이별해야 하는 것은 다 알고 있지만, 스치는 인연이라 해도 연락이 단절되면 추억하면서 외로움에 씁쓸해질 때도 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작가는
병환으로 고생하는 할아버지를 걱정하는 학생에게 말했다.
"진정한 인간으로 성장하고 싶다면,
이 우주가 당신을 상실이라고 하는,
인생의 박사 과정에도 등록해 놓았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결국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모든 것을 잃게 될 수밖에 없다.
집, 자동차, 직장, 돈, 젊음,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들까지도
모두 잠시 빌려 온 것이라는 말에 멈췄다.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상실과 이별을 깊게 들여다봤다.
치매를 늦추는 약을 먹으면서 주간보호센터(노치원)만
열심히 다니는 엄마가 건강을 되찾아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종일 어린이집에 보낸 손자를 기다리듯이
하원 시간이 되면 집에서 안전하게 엄마를 맞아주는
아빠를 생각하면 여러 가지 생각이 서로 엇갈려 머릿속에서
다툰다.
자식 입장에서는 두 분이 오붓하게 여생을
준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건 모두 내 이기적인 마음일 것이고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이기적인 마음으로 매일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게 틀림없다.
그동안 집에서 키우던 동물이나 수십 년 지내오던
집, 자동차, 친구와의 이별은 있었지만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나로서는 두려움만 클 뿐이다.
사람이나 사물과의 헤어짐은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상실은 공허함, 무기력함, 분노, 슬픔, 두려움 등의
감정을 남기는데 불면증에 시달리고 극단적인 감정으로
우울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아직 상실을 맛보지 않았기에
성장이 없어서 벌벌 떨고만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삶은 때로 언제 상실을 겪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를 살게 만듭니다.
_인생수업 중에서
사람은 누구나 쓰러지게 되고 상실을 어른이 되는 입문식이라고 한다.
마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통과의례처럼 말한다.
잃는 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균형이든,
품위든 모든 상실에는 닮은 점이 있다.
그것은 불길을 뚫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
진정한 힘은 자신이 누구인가,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깨닫는 일에서 시작된다.
오늘도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며 노트를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