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라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시기에 하필 아들은 사춘기를 맞이했다. 아무런 사심이 없다면 이렇게 잔소리를 일삼지 않을 텐데, 참고 참고 또 참다가 폭발해버리고 마는 엄마는, 호르몬 때문일까, 아니면 여자의 뇌구조가 본래 이상한 걸까?
후회할바에는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어찌해서 나란 존재는 후회하면서 왜 또 시작하는지 모른다.
사춘기 아들에게 최대한 말을 아끼고 감정적이지 않게, 이성적으로 대하려 노력했다. 존대하는 말로 아이를 대해 보기도 하고, 말을 걸어도 귀에 에어팟이 거의 꽂혀있어서 나와 대화하기 싫어하는 거라 생각했다.
아이와 이 시기를 잘 넘기려고 객관적이고 한 발짝 물러서서 최대한 멀찍이 바라보려 노력하며 못 본 척 외면했다. 그런데 누군가 아들 친구 엄마를 만나고 돌아오면, 그동안 꽁꽁 잘 정리해 두었던 서랍장 안이 뒤죽박죽되듯이 고요한 마음의 바다에 태풍이 와서 예고 없이 휩쓸어 버렸다.
(나도 안다. 아이는 어처구니없다는 것을)
헤드셋을 끼고 크게 욕하면서 게임을 하고 있는 아들, (게임을 하지 않으면) 안경을 매일 써야 하는 것처럼 귀에 에어팟은 언제나 꽂고 흐느적거리는 아들을 보면 결국 폭발해 버린다.(그동안 많이 참았던걸 꼭 이날 터뜨린다)
순간, 아들에게 소리를 지르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지만 돌이킬 수 없어서 그냥 질러버리고, 도망치듯 아이 방에서 뛰쳐나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모자란 사람이 엄마 자격이 있는가 방금 있었던 일을 비디오로 되감기 하듯이 곱씹어본다.
내 일이 아니고 다른 언니들의 아이들이 속 썩인다고 고민을 털어놓을 때는 미처 몰랐다. 왜냐하면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기에 상상조차 할 수도 없었다. 그때는 태연하게, 아주 교과서적으로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말했던 내가, 지금은 또라이처럼 변해 있었다.
다행히 남편은 갱년기 증상이라서 감정조절, 분노조절을 못하는 거라며 나를 감싸주지만, 그래도 화가 누그러들지 않았다. 한창 호르몬이 요동치는 시기라 때론 울컥하고, 때론 눈물이 나고, 때론 이유 없이 화가 났다. 아이가 미워서가 아니었다.
아이는 사춘기로 자신의 감정을 감내하기도 힘든데, 불붙은 데 휘발유를 뿌리듯 엄마라는 사람이 묵묵히 기다려주기는커녕 부채질하는 격이라니 어리석어 보여서 부끄러웠다. 그래도 글을 쓰면서 생각정리가 되기에 창피한 가정사임에도 이렇게 아름답지 않은 글을 써본다.
우리 엄마는 내가 사춘기일 때 어땠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엄마는 바빴다.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면 가만히 있으면 관심받지 못했다. 그래서 늘 엄마는 작은 오빠차지였다. 그렇다면 우리 아들도 나의 사랑을 받기 위한 관심받기 위함인가 생각했다. 늦은 시간 뒤척이다 잠이 깨면 다시 쉽게 잠들지 못했다. 걱정이 많으면 잠이 달아나는 것처럼 아이들 생각을 하면 잠이 안 왔다. 어떻게 해야 이 시기를 잘 극복할지 도와주고 싶은 게 엄마였다.
행복한 세상을 살게 해주고 싶은데, 어느새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으면 불안했다.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지 감히 장담할 수 없지만 가장 쉬운 게 공부라고 학업에 뒤처질까 두렵다. 더해서 아들은 자신은 왜 키가 안 크는지 모르겠다며 키 크는 약을 사달라고 해서 놀랐다. '일찍 자고 많이 먹으면 자연스럽게 큰다'는 정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게임, 웹툰, 쇼츠 등에 시간을 도둑맞아서 늘 잠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런 말을 하면 꿀밤을 주고 싶다가도 아들의 키를 고무줄처럼 늘이고 싶었다.
아들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고등학교 선택이 계속 하향되었다. 과학고에서 자사고로, 그리고 3학년에 올라와서는 일반고로 국어를 배워서 그런지 스스로 주제파악을 잘했고, 자신이 선택한 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목표는 크게 잡아야 한다고 귀에 닳도록 말했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몇 주간은 신경전이 오갔지만 아이는 자신의 소신대로 선택했고, 우리는 믿어주었다. 부모 노릇하기도 어렵고 어른 노릇하기도 어렵듯이, 하루하루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어나는 것은 고리타분한 꼰대가 되어가는 모습뿐이었다.
아들은 자신만의 속도로 세상을 마주하고 있고, 나는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조급함과 걱정 사이에서 흔들린다. 호르몬의 반란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춘기 아들과 갱년기 엄마. 어쩌면 우리에게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완벽한 엄마가 되려 하기보다는, 나도 실수할 수 있고 감정적일 수 있는 한 인간임을 인정하면서, 오늘도 나는 꼰대가 아닌 '이해하는 엄마'가 되기 위해 한 걸음 물러서서 아들을 바라보려고 했다. 그리고 아들을 믿는다. 이 시기 역시 지나가리라는 것을, 우리 모두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