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이른 시간에 어깨통증으로 재활병원을 찾았다. 그냥 조금 팔을 덜 쓰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몸은 그럴 마음이 없는지 쉬이 나아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병원을 찾았다. 아쉬운 사람이 우물판다고 참고 참다가 병을 키워서 가는 편이다. 처음 내원했을 때 주사치료 요법을 하자고 했을 때 완강히 거부하고 약만 받아왔는데 불과 일주일도 지나기 전에 엄살을 하면서 병원을 향했다.
병원은 본래 월요일 오전시간과 주말에 환자들로 붐비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몸이 아프니 지난밤에 잠을 설친 탓하며 조금이라도 빨리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병원에 도착했다.
역시나였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 게 틀림없다. 대기실을 가득 메운 병원을 비집고 들어가서 접수창고에서 휴대폰 번호를 넣고 접수완료되었다는 굿닥의 안내 문자를 확인하고 최대한 사람들이 없는 구석으로 자리를 잡았다. 평상시 진료를 대기하는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을 오래 기다리며 오늘의 핫뉴스를 읽어 내려갔다.
내 몸이 아프니 다른 뉴스 속보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이름이 불리고 진료실 앞에서 내 차례가 되기를 기다리면서 간호사가 어디가 아파서 왔냐고 물었다. 그 이유를 묻는 이유를 알았다. 어깨가 아파서 왔다는 말을 들은 간호사는 옷을 건네며 탈의실에 갈아입고 오라고 환자복을 건넸다.
겨울이라 유난히 춥다고 의식면서 자꾸 몸을 움츠렸던 탓인지 몰라도 몸이 유연하지 않고 뻣뻣하게 굳어져 있었다. 특히 컴퓨터를 많이 하는 직업으로 인해 더 어깨를 위로 치켜세우고 있어서 염증이 온 것이라고 추측했다.
원인이야 어찌 됐든 옷을 갈아입을 때 나도 모르게 '악'이라는 고통소리가 절로 나왔다. 어쩌다 팔이 올라가지도 않고 돌아가지도 않는 건지 몸에서 자꾸 나이를 인정하라고 신호를 보낸다. ㅠㅠ
의사 선생님의 진료를 받고 물리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한 가지 처치가 더 남았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운동치료였다. 친절한 운동치료사님은 엎드려서 누워보라고 했다. 시선은 땅바닥을 향하고 있기에 온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운동치료사는 그런 내 경직된 몸을 읽었는지 편안하게 말해줬다.
"어디 불편하신데 있으신가요?"
"아니에요."
"파스에 대한 알레르기 있으신가요?"
"아니요. 없는 거 같아요."
"긴장하지 마시고, 조금이라도 불편하시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아무리 치료사라고 해도 낯선 누군가가 내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 몸을 만진다는 것은 당연히 바짝 긴장하게 될 수밖에 없다.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그럴 일이다. 그럼에도 오늘따라 운동치료사의 말이 특별히 마음에 와닿았다. 단순한 의례적인 인사가 아닌, 진정으로 상대방의 상태를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런 진심 어린 관심이 얼마나 귀중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특히 코로나를 겪으면서 온라인 커뮤니티가 많이 생겨났다. 그래서 가끔은 사람 대 사람이 아닌 사람 대 기계로 취급받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요즘 들어 가장 아쉬운 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점점 더 기계적으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상대방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의 필요와 욕구만을 앞세운다. 그들에게 타인은 그저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 혹은 인원수를 채우기 위한 숫자에 불과하다.
나 역시 이런 고통스러운 깨달음을 얻기까지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책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실제 삶은 책장 속 이론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때로는 아픈 경험을 통해서만 진정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뇌는 신경가소성이라는 특성 때문에 '경험'을 쉽게 망각하곤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강한 정서적 충격을 동반한 경험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으며, 그것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이는 마치 단단한 바위에 물방울이 떨어져 흔적을 남기는 것과도 같다. 수적천석(水滴穿石)처럼.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관계도 시간이 지나면 그 빈틈으로 부정적인 요소들이 스며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경험들이 우리를 더 현명하게 만든다. 섣부른 판단을 멈추고, 말과 행동에 더 큰 신중함을 소홀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병원에서 받은 치료는 단순히 육체적 회복만이 아닌, 내면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최근의 경험들을 되짚어보며, 이러한 깨달음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적인 인지능력임을 새삼 느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서로의 불완전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대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인간관계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운동 치료사의 "불편하신데 있으신가요?"라는 물음처럼, 작은 관심과 배려가 모여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