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미식가인 그의 평이 무더운 여름, 시원한 나무 그늘의 피톤치드를 맞는 느낌이라는 맛에 또 호기심 발동한다. 지난 8월 도쿄여행에서 처음 맛본 하이볼의 맛이 너무 짜릿해서였을까?
아니면 젊은 층들이 즐겨마신다는 하이볼의 맛이 좋은 건지, 누가 봐도 이모뻘인데 20대와 즐기는 분위기가 좋아서 무작정 따라나섰다. 술맛도 모르는 나는 그 분위기를 참 좋아한다. 어찌 보면 사람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고수 하이볼맛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인데 은근히 잘 맞을 때가 있다는 카피라이터의 말처럼 고수 하이볼이 어떤 맛일지 오늘 당장 맛보고 싶어졌다. 아침 출근길 내내 하이볼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남편은 짧게 답했다.
"참,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아서 좋겠다."라고. 20년 동안 내 옆에서 편들어준 남편도 이젠 지친 걸까?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은 우리 부부는 연애결혼을 했다. 같은 건물에 옆사무실에 근무했던 우리는 술자리에서 고수 하이볼처럼 친해졌다. 서로 취향도 비슷하고 관심사도 비슷해서 급하게 호감도가 높아졌다. 누가 봐도 죽이 척척 맞는다며 하루를 멀다 하고 데이트하고 급진적으로 만났었다. 주위에서 우리 커플을 지켜보는 이들은 위험해 보인다며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고 했지만 말리면 더 불타오른다고 우리가 그랬다. 결국 함께 교통사고를 당하고 헤어졌다. 몇 년 후에 다시 만나서 결혼했지만 인연은 정해져 있나 보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렇다. 서로 공통된 관심사가 많다고 급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위험할 수도 있지만 더러는 희귀하게 천생연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수 하이볼처럼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오묘한 매력에 이끌려 맞지 않는 조합으로 보이지만 속내를 나누는 찐 친구가 되기도 한다.
대부분은 내게 얻을 게 있어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은 원하는 바를 달성하면 금세 싫증 내며 당당하게 떠나버린다. 그런 나는 떠나간 인연에 발등 찍혔다며 서운해하고 의심하지 않고 아낌없이 내주었던 나를 한심스러워하며 다시 한번 인간관계에 선을 긋는다. 처음부터 톱니바퀴처럼 잘 맞는 일은 없다는 것을 하나씩 배워나가는 게 결혼이다. 그렇게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지나치게 간섭하면 멀어진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 존중해 주면 고수 하이볼 같은 조합처럼 인생의 씁쓸한 맛보다는 의외의 피톤치드 같은 맛을 내며 살 수 있지 않을까.
하이볼의 여러 가지 유래
1. 19세기 영국 상류층에서 먼저 유행하던 방식으로 도수가 높은 위스키에 소다를 타서 마시는 방법으로 이때는 스카치 앤 소다 혹은 위스키 앤 소다라고 불리었다. 이게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큰 유행이 되었다.
2. 하이볼이라는 이름은 기차산업에서 유래되었다. 기차 출발을 알리기 위해 공을 들어 올렸는데, 이것이 음료를 빨리 만들고 손쉽게 마실 수 있는 음료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용어였다. 1890년대에 사용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이후 미국에서 큰 유행이 되면서 바텐더들은 이런 방식의 칵테일을 하이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3. 영국 상류층에서 주로 하던 스포츠인 골프 경기 중에 갈증을 풀 수 있게 마시던 음료 중의 한 가지로 골프라운드 후반으로 갈수록 시간이 오래 걸려 꽤나 마시게 되면 플레이어가 술에 취해서 엉뚱한 곳으로 가면 하이볼이라고 외치게 만드는 음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