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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Dec 04. 2023

남편 눈치 보게 되는 운전

난 왜이 렇게 작아지는가

운전 구력 20년이 지나면 뭐 하나 아직도 남편이 조수석에 앉으면 왕초보가 되어 운전을 서먹하게 하는 나다. 늘 운전하던 차인데도 앉은자리부터 어색하다. 이상하게 사방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고 룸미러도 내려가 있는 거 같고, 백미러를 살펴도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다. 운전석 좌석에 맞게 다시 시트를 조정을 해도 불편함이 밀려와 자세를 몇 번 추스른다. 슬슬 앞으로 액셀레이터를 밟아보지만 어딘지 모르게 차가 나를 받아주지 않고 밀어내는 느낌이다. 눈치채지 못하게 아슬아슬하게 달려보지만 불호령이 내려질까 겁부터 난다. 차라리 애들을 태우고 운전할 때는 더 자유롭고 편한데 남편은 왜 눈치를 보게 될까. 자주 혼나서 그런가?



처음 운전을 배운 것은 20년도 더 전이라 까마득하다. 지금의 남편이 남자 친구이었을 때 연애를 하면서 운전면허 실기를 보고 면허증을 취득했다. 다행히 운전면허 학원 다녔기 때문에 면허증은 취득했지만 운전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다. 그래도 용감하게 아버지 차를 과감하게 운전했던 것을 보면 그 용기는 어디서 나왔는지 모른다. 남편이 데이트할 때마다 도로 연수를 해 주었다. 어찌나 친절하고 자상했는지 그 모습에 결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부부지간에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면 싸우는 게 당연하다 했지만 그 당시에는 부부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장담한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하고 각자의 차를 운전하면서 살았다. 문제는 종종 내가 남편의 차를 운전하거나 내 차에 남편을 조수석에 태울 때 사소한 말다툼이 생겼다. 남편은 내가 운전하는 것을 잔소리했고 나는 계속 참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단 한 번도 남편이 운전할 때 잔소리를 안 했는데 더 이상은 못 참을 거 같았다. 그래서 글을 써서라도 풀어내고 싶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공간지능이 떨어진다고, 김여사처럼 운전한다고 매번 혼났다. 비가 와도 늘 걱정하는 말로 시작해서 잔소리로 끝났고, 눈 오는 날에도, 초겨울에는 블랙아이스를 조심해야 한다며 잊지 않고 염려를 해준다.  남편이 당연히 고마운 적도 있지만 지나치기 때문에 참아줬으면 좋겠다.


나름 20년 넘는 무사고 운전자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주눅 들어서 운전시마다 벌벌 떨고 있나 싶어 고민을 언니에게 토로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언니는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투덜거렸다. 남자는 모두 다 그렇다고. 언니도 형부에게 귀에 딱쟁이가 생길 정도로 잔소리를 수없이 듣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고 했다. 나도 처음에는 언니말대로 하려고 했지만 상황에 따라 비수처럼 꽂혀서 잊히지 않고 복수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참을 수 없는 건 남편이 '김여사'라고 놀리려다 '민여사'라고 놀릴 때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자동차를 사고파는 사이트로 유명한 보배드림에서 운전을 못하는 사람을 일컬어 '김여사'라고 치부해 버린다.


얼마 전 우리 부부는 주말 라운딩이 약속돼 있었다. 이른 티업시간으로 새벽같이 일어나서 이동해야 했는데 남편은 전날 마신 술이 덜 깨서 내가 운전을 해야 했다.  이른 시간이라 중부 고속도로 중간에는 안개도 짙게 깔려 있어서 가시거리가 짧았다. 특히 구간 단속도 심해서 속도를 낼 수 없어 천천히 달렸다. 양쪽으로 나란히 천천히 달리는 자동차를 뒤쫓아 가다 보니 속도가 80도 안되게 달리고 있었다.


남편은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여기가 국도냐?" 라며 내게 물었다. 고속도로가 왜 이렇게 가다 서다를 하냐며 소리쳤다. 나는 양쪽으로 천천히 달리니 어쩔 수 없지 않냐며 대답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찜찜했다.

고속도로는 국도와는 달리 신호도 없고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면 오히려 국도보다 운전하기는 더 쉽다. 하지만 급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으니 1차선을 최대한 피해서 달려야 한다고 했다. 중부 고속도로는 규정속도가 110인데도 안개 때문인지 모든 차가 서행하며 뒤따라갔다. 1차선을 타면서 너무 천천히 달리면 신고대상이 된다며 나에게 저렇게 운전하면 '김여사' 되는가라고 또 나를 가르치고 있었다. 나 같은 여성운전자들은 대부분 뒤차를 따라가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운전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운전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도 고려하면서 운전해야 한다는 게 남편의 입장이다. 하긴 119 구급차를 타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위급한 차를 보면 당연히 피해 줘야 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나도 다 알고 있는 내용을 얘기하니까 귀가 아프고 듣기 싫었다.


'그렇게 못 믿겠으면 본인이 하던가'라는 말이 목구멍으로 치켜 올라왔지만 꿀꺽 삼켰다.


내가 남편대신 운전을 할 때는 술을 마셔서 운전을 못 할 때이다. 항상 가족들이 움직일 때는 자신이 운전을 하는 편이지만 술이 덜 깨거나 집안 행사로, 회식으로 술을 마시면 운전대는 내가 잡을 때가 많다. 그렇게 내가 운전하는 게 못 마땅하면 술을 안 마시고 본인이 하면 될 일인데 잔소리하는 게 재밌는 걸까.


그래도 이렇게 글로나마 마구 남편 욕을 했더니 속이 다 시원하다.



p.s.  우리 이웃작가님들이 저를 토닥여주셨습니다. 아내라서, 가족이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소중하기 때문이라고요.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또 위안을 삼아야 하나 봅니다.  행복한 저녁 되세요~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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