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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Dec 01. 2023

없음의 대명사(ft. 오은)

그것, 그것들에 대하여





오은 시인




1982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 <유에서 유>, <왼손은 마음이 아파>, <나는 이름이 있었다> 등 다양한 작품이 있다. 오은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인 <없음의 대명사>를 읽고 빠져들었다.


'없다'와 '있었다' 사이의 시차와 간극을 메우는 것이 우리의 슬픔이라고 한다.

더 이상은 '이것'으로 가리킬 수 없는 대상을 다시 말속으로 불러내기 위해서 '그것'을 불러내는 것이 이번 시집에 가득하다. 

'그것'이 바로 '슬픔'으로 가득하다.




오은 시인의 대명사는 잃어버린 것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있게 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마주 보고 말을 나누어서

지금 - 여기에 없는 것들의 자리를 마련해 주고 있다





'그'라는 지시대명사는 듣는 이가 생각하고 있는
대상을  가리킬 때 쓰인다.
'그것'이라고 지시했을 때
타인이 나와 동일한 대상을
떠올릴 거라는 기대는
과거의 경험이나 현재의 맥락을
공유하고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_오연경 문학 평론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를 때 '그것'이라고 표현했다.

지금 여기 없는 것을 '그것'이라고 말했다.

오은의 시집을 읽으면서 내가 그것, 그곳, 그것들에 대해서 내가 너무 몰랐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곳은 어디일까?

집, 학교, 직장, 여행지 일수도 있는데 나에게 그곳은 아직도 강렬하게 남는 곳이 있다.

바로 세월호 사건, 명랑의 울돌목이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잊히지 않는 그곳이다.



오은 시인은 대명사 속에는 부재, 상실, 아픔, 망각이 서려 있다.

그것을 잃었던 자리, 너를 잃었던 자리, '잃었다'의 자리에는 '있었다'가 있었다.


여기저기서 그곳을 찾는 사람들,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상실의 아픔으로 있었다가 없어졌기에 그곳에 가서라도 너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찾아다니는 그곳에 가면 누구라도 가슴이 멍먹해져 아려온다.


가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아픔을 같다고 견줄 수는 없지만 잃어본 사람들은 그것과 비슷하다며 그리워 서성인다.


이런저런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그곳은 가슴에 선명하게 깃들어 있어 수백 년이 지나도 마치 어제 일처럼 떠올릴 것이다.


슬픔이란 그런 거다. 문득문득 그리우면 그곳에 네가 있다는 것을 보듬어주러 갈 것이다.










그곳



거울은 말한다.

보이는 것을 다 믿지는 마라.


형광등이 말한다.

말귀가 어두울수록 글눈이 밝은 법이다.


두루마리 화장지가 말한다.

술술 풀릴 때를 조심하라.


수도꼭지가 말한다.

물 쓰듯 쓰다가 물 건너간다.


치약이 말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변기가 말한다.

끝났다고 생각한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라.





위에서 말하는 대명사 그곳은 집안에서 정든 곳이기도 하다.

매일 눈뜨면 마주하는 거울, 형광등, 두루마리 화장지, 수도꼭지, 치약, 변기다.


모두가 살아내고 있는 가운데 가장 필요한

욕실의 물건들이 나에게 말해주는 듯했다.


특히 거울이 전하는 말은 백설공주 동화가 떠올랐다.

'거울아 거울아 누가 제일 예쁘니?' 묻는다면 우리 집 거울은 누구라고 말해줄까.

겉모습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속모습까지 들킨 느낌이었다.



이해력이 둔하고 행동이 굼뜬 사람을 우리는 형광등이라고 별명을 부른다. 장단점이 있듯이 형광등은 미리 예고하고 빛을 내뿜듯 좋은 점이 있으면 안 좋은 점도 있다.  말귀가 어두울수록 글눈이 밝다는 말에 공감되었다. 말귀에 대해서도 한참을 생각했다.


말과 귀가 어두운 사람이 글을 읽는 눈이 좋다는 뜻일 텐데 왜 다 주지 않고 하나를 주면 다른 하나는 부족하게 주는 것일까 생각해 본다.



한 연을 읽을 때마다 음미하며 읽게 되는 오은 시집의 시는 빨리 읽어낼 것이 아니라 <없음의 대명사>를 서서히 머무르게 하고 싶었다.









1부에 범람하는 명랑


그곳, 그것들, 그것, 이것에 대한 꼭지가 무려 26개의 시로 풀어주는데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대명사를 되새길 수 있어 좋다.






2부는 무표정도 표정


그들, 그, 우리, 너, 나에 대해 나오는데 연애해 본 사람, 사랑에 빠져본 사람은 떠오르는 누군가를


떠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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