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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Dec 18. 2023

세차장에서 만난 할머니

아나바다 운동



몇 주간 날씨가 춥다는 이유로 세차를 미뤄두었니 남편이 차에 기름때가 찌들면 잘 안 닦인다며 차를 탈줄만 알고 관리를  안한다며 잔소리 한다.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늦은 점심을 먹고 느지막하게 옷을 따뜻하게 입고 셀프 세차장으로 향했다. 늘 대기를 하는 셀프 세차장이었지만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대기가 없었다. 그렇다고 텅 비어있지 않았고 딱 한 자리가 남아 있어 곧바로 입장했다.


세차창의 풍경은 언제나 살아 움직이는 정겨운 장소다. 세차게 내뿜는 고압의 물소리에 나도 모르게 답답하게 막혔던 숨통이 트인다. 세차하러 온 사람들은 모두 바쁘다 바쁘다며 몸을 움직인다. 각자 자기차를 문지르며 몸의 유연성을 보란 듯이 자랑이라도 하듯, 자동차 천장까지 계단에 올라가서 팔을 휘저으며 세차를 뽐낸다. 질수 없다는 듯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매번 올 때마다 세차의 정석을 보여주겠다며 하나하나씩 설명하지만 나는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세차장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가 한마음이다. 보물처럼 아끼던 자차를 살신성인을 다해 문지르며 닦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생기 넘친다. 겨울철에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곳이 또 있을까 싶다. 작은 티끌이나 흠집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분무기로 닦아낸다. 아까워서 도로 위를 어떻게 달릴까 싶은 심정이다.


저렇게 차를 소중히 닦는 오너드라이버들은 차를 타는 것도 좋아하지만 세차를 하면서도 희열을 느끼는지 행복한 미소가 가득하다. 더러워진 몸을 깨끗이 닦고 나면 시원하고 후련하듯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이 전해졌다. 나는 설거지를 마치고 났을 때의 기분이 그렇게 상쾌했는데 아마 같은 마음이라 믿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집안 대청소로 기분전환되듯 세차를 해도 기분 전환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먼저 고압세차로 차 먼지를 털어내고 거품세차 버튼을 눌러 하얗게 세제를 뿌리고 몇 분간 먼지와 때가 불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세차장에 어울리지 않는 낯선 할머니 모습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 옷차림과 거동만 봐도 연세는 우리 엄마 나이와 비슷해 보였다. 할머니는 익숙한 걸음으로 재활용 수거하는 곳으로 가셔서 휴지통을 살피고 있었다.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했다.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들고 온 가방을 열어서 가방으로 옮겨 담고 있었다. 세차장에서 쓰는 극세사 수건인 듯 보였다.











젊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셀프 세차장에서는 거의 천 원짜리 극세사 수건을 한 번만 쓰고 버리고 가는 듯했다. 우리처럼 한 번도 자판기에서 수건을 구입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수건의 양이 꽤 많은지 할머니는 반복해서 수건을 주워 담기를 반복했다. 왜 할머니는 저 수건을 주워가실까 궁금해졌다. 남편은 괜한 궁금증을 피운다며 신경 끄라고 나무랐지만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라는 아나바다 운동이 떠올랐다.


아나바다 운동은 1997년 IMF 구제금융 요청 사태 이듬해인 1998년에 등장한 운동이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자 만든 운동으로 재활용하자는 운동이다. 요즘 MZ세대는 모르겠지만 나와 같은 40대 중후반부터 5.60대는 알고 있는 유명한 운동이었다.


더구나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에 가면 그렇게 성한 물건이나 옷가지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버려진다고 하는데 걱정이다. 그 정도로 우리나라는 국민들이 전 세계적으로 잘 사는 대열에 올라섰다고 하지만 너무 물질만능주의가 되는 거 같아서 씁쓸했다.


분명 단 돈 천 원이 부족하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말이다. 물질 만능주의에서 오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또 다른 문제가 발생되고 있다는 것을 잊고 사는 거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예전 어른들에게 배울 점은 본받아야 하는데 이를 어쩌나. 남의 비판과 평가에 신경쓰지 말고 소신껏 살아야하는데 말이다. 세차장에서 만난 할머니도 분명 말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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