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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Oct 20. 2023

소박한 굿의 비밀, 임신을 향한 여정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


따르릉, 따르릉~~

pixbay 출처

아침부터 몇 시에 올 수 있는지 몇 번 전화가 왔다. 외출준비를 끝내고 어머님 집 앞에 막 주차를 하는 와중에도 못 참으셨는지 전화기가 울렸다. 다 왔다고 말하기도 전에 이미 전화는 끊겨 있었다.


어머니 뒤를 따라 엄숙한 분위기에 휩싸인 작은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허름한 나무로 지어진 문은 낡아서 문이 잘 안 닫히고 삐걱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거슬렸다. 


방안은 어둠을 가르며 코끝을 찌르는 향냄새와 큰 양초에서 나오는 작은 불꽃이 방 안의 분위기를 한층 더 신비롭게 만들었다. 무당이 앉은 자리의 뒤의 한가운데는 황금 옷을 입은 부처상과 좌로는 장군상과 우로는 흰머리의 약사보살이 차지하고 있었다. 힐끗 봤음에도 분위기가 무거웠다.      



무당은 화려함과는 다르게 아주 소박한 상 앞에 앉아있었다. 한 손에는 녹슨 구슬이 달린 방울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흰 쌀을 주먹에 쥐고 있었다. 작은 불꽃 아래 마주 앉아있는 이 엄숙한 분위기에 더 기가 눌리고 작은 불꽃의 움직임이 어디론가 나를 데리고 가는 거 같았다. 



처음이 아닌 어머님은 자연스러운 말투로 안부 인사를 건네며 우리 며느리라며 나를 소개했다. 서먹한 분위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전후 사정을 얘기하면서 우리 며느리가 병원에 다니는데 이번만큼은 꼭 임신에 성공해야겠는데 어떻게 되는지가 궁금하다는 얘기였다. 이번에는 임신에 꼭 성공하게 할 방도를 찾는 듯했다. 나는 눈치도 없이 이제야 알아차렸다. 병원의 의학의 힘과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기운을 받으려는 어머님의 간절함이었다. 정말 나도 이번만큼은 꼭 임신이 되어 입덧이란 것도 꼭 해보고 싶었다.    

 


찬찬히 섬뜩한 점쟁이의 얼굴을 살필 틈도 없이 그녀는 다짜고짜 생년월일과 생시를 묻고 남편의 생년월일과 생시도 연달아 물었다. 하얀 종이에 받아 적으시더니 눈을 지그시 감고 주문을 외우듯 염불을 외우는 듯했다. 이게 바로 신과 접신하는 건가 싶었다. 한참을 그렇게 하고 계시고 나는 표시 안 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제야 천장에 수많은 등이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알록달록 등들이 빈틈없이 가득 차 있었다. 꽤나 유명한 점집이거나 마음 약한 분들이 이렇게 의지를 많이 하고 살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적막하고 고요한 곳에 앉아있으니 어머님과 대구의 팔공산과 팔각정에 자주 갔던 일이 추억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기를 갖기 위해 정성이 필요하고, 사업하는 남편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열심히 쫓아다녔다. 팔공산에 버스를 타고 2시간을 타고 갈 때는 몰랐는데 부모님들이 그렇게 자식들 잘되라고 기도 다니시는 모습이 짠했다. 


허리가 꼬부라져 제대로 펴지지도 않은 몸으로 나보다도 더 산을 잘 오르내리는 모습이 모든 부모님이 자식을 생각하는 모습이 전해졌다.     


갑자기 점괘가 나왔는지 작은 상으로 쌀을 던지고 해석을 하는 건지 중얼거렸다. 무슨 말인지 전혀 내 귀로를 해석이 불가했다. 결론은 옛말 다르지 않았다. 점집에 가려면 쌀을 담가놓고 가야 한다는 말을 그제야 점집에 앉아서 깨달은 것이다. 무당은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는지 말을 아끼는 것도 같았지만 결론은 굿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나열했다. 조상님 중에 객사하신 분이 계시다고, 그분을 좋은 곳으로 보내는 기도를 올려야 하고, 배고프신 조상님이 계셔서 맛있는 음식으로 달래야 한다는 둥, 추위에 떨고 계셔서 고운 옷을 입혀서 보내야 한다는 둥, 뭐가 사실인지 모르게 홀려 들기 시작했다.      


돈만 내면 모든 상차림도 옷도 준비해준다는 얘기다. 어머니는 올 것이 왔다는 듯 이것만 하면 금방 아기가 점지 되는지 물었다. 나는 무서운 마음에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몰랐다. 정신이 혼란스럽게 횡설수설하는 그녀는 신이 몸에 들어왔는지 목소리도 말투도 변해서 무서울 뿐이었다. 영화에서 보던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니 감당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당연히 해야 한다며 준비하라고 했고 나는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퇴근 후 남편에게 말하겠다고 했지만 거의 날까지 잡는 분위기였다.     


점집에 올 때는 굿을 할 각오를 하고 와야 한다는 말이 맞았다. 점쟁이에게 들은 게 있는데 이 굿을 안 하면 일을 망칠까 봐 더 두려움을 조장하는 거 같았다. 왜 사람들이 점집에 의지하게 되는지 알 수 있었다. 과거는 거의 맞추는 거 같은데 미래를 과연 맞출지는 내가 해봐야 말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교회도 다니지 않고, 절도 다니지 않던 나였지만 그렇다고 점집을 다니면서 무속신앙에 의지하게 될까 두려웠다.      


사업하는 남편은 해마다 한 번씩은 천도제를 올려주면 좋다는 말에 더 마음이 무거워졌다. 앞으로 답답한 일이나 문제가 터질 때마다 기댈까 두려웠다. 만약 신이 진짜로 계신다면, 내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바랄 때 들어줘야 하는 게 아닌가? 100번 소원 쓰기도 정성 들이고 있는데 너무한 게 아닌지 야속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남편은 엄마의 마음을 어긴다는 생각에 일단 진행해보기로 했다.     


점집과 통화를 하고 굿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준비할 것은 남편과 나의 속옷과 나이만큼의 동전 개수를 준비하라고 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두려움이 컸고 은근 기대감에 잠을 설쳤다.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금방 임신이 될 거처럼 기도했다. 모든 게 합이 들면 좋다고 병원에 다니는 시기와 굿하는 시기가 맞물려서 다행이라고 좋은 운이 왔다고 믿었다. 창피한 게 아니었다. 임신만 된다면 못할 게 없는 물에 빠진 심정으로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잡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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