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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Dec 18. 2023

자작나무와 주목나무의 인생

나는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웠다  중에서


나는 자작나무를 좋아했다.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다른 나무들에 비해 줄기가 백옥같이 하얀색이라 좋았다.

종종 집에서는 멀어도 자작나무 카페를 자주 찾았던 이유도 다녀오면 몸과 마음이 깨끗해진 느낌이었다.

다른 나무에 비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솟은 나무의 끝은 모든 사람들이 올라가고 싶어 하는 정상처럼 보였다. 아무리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도 끝은 보이지 않았다. 과연 열심히 산다는 것은 뭘까?라는 생각도 종종 든다. '열심히'라는 말속 뜻에는 개개인마다 크기와 노력의 가치는 다를 테니 말이다.



자작나무 숲에 가도 정작 그 아래 땅과 나무의 뿌리 밑동만 보고 올 수밖에 없다. 큰 키의 자랑을 뽐내듯 머리를 보여주지 않는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을 왜 넓혀주는지도 알았다. 사람이나 나무가 똑같았다. 거리 유지가 관 검었다. 어느 정도 간격을 유지해 줘야 건강하게 성목으로 자랄 수 있다. 자작나무의 꼭대기를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할지 궁금했다. 아마도 그 자작나무 숲에서 나와야 볼 수 있다는 것을.



자작나무는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도 씨앗에서 싹이 트는 발아율은 고작 10퍼센트라고 한다. 두렵지만 용기를 내어 껍질을 뚫고 나오는 씨앗만이 성목으로 자라는 것이다. 씨앗의 심정을 알 수 있었다. 가만히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의 모습과 도전적이고 미래에 두려움 없이 앞으로 질주하는 모습 말이다.


두려움 따위는 엄살에 불과했다. 명확한 목표가 있다면 일단 시작하고 한 걸음 나아가는 게 원리라는 것을 씨앗도 말해주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거목도
그 처음은 손톱보다도
작은 씨앗이었음을 잊지 말기를

_나는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웠다  p.97





오래된 나무일수록 속이 비어 있다는 것도 책에서 알았다. 대표적인 나무로는 태백산 산자락에 살고 있는 주목나무다. 세월이 흐를수록 속을 비워내는 몸 안의 빈 공간을 넓히는 이유도 있었다. 수백 년간 버텨온 생명체가 온갖 비바람과 병충해로 상처 부위에 물이 흘러들면 조금씩 썩어서 부식되어 중간이 텅 빌 수밖에 없다고 한다.


수백 년 지탱해 온 뿌리의 힘으로 굳건히 버티면서 빈 공간에는 작은 들짐승과 곤충들을 가슴에 품는다고 한다.


살아서 죽을 때까지 보시하는 주목나무의 인생을 들으니 정원에 있는 나무들조차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아프면 참지 못하고 병원에 가는 내가 순간 부끄러웠다. 오랜 상처를 딛고 다른 사람에게 희생하는 나무의 생을 보면 아낌없이 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무가 하는 행위들에는 모두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가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도 나이 제한에 걸려 할 수 없는 일들을 대면할 때 어찌나 속상했던지 모른다. 중년 여자의 나이로는 아르바이트나 직장도 구하기 힘들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생각해 보면 퇴직한 부모님들이 오랫동안 품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홀로 자기 이름 석 자로 다시 인생의 후반전으로 태어난 느낌일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 싶다. 그래서 퇴직하신 분들이 산을 찾아서 많이 다니셨나 싶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내 것을 챙기려는 사람들보다 내 것을 내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주목나무처럼 나이 든 자에게 필요한 것은 세월이 만들어 낸 빈 공간에 다른 동물들을 품어 주는 자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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