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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Dec 23. 2023

버스 처음 타 본 사람처럼 왜 그래


어제 연말 모임이 있어 백만 년 만의 저녁 외출을 했다. 아이들과 남편은 집에 남겨두고 나 홀로 나가는 외출은 언제나 죄책감이  따른다. 너무 오랜 시간 가정주부로 살았던 습관인지 직장 생활한 지 1년이 되어가는데도 적응이 안 된다.


일찍 퇴근해서 집에 들러 저녁을 준비해 주고 집을 나섰지만 다른 날보다 자동차들이 많아 보였다. 금요일이라 그런지 아니면 원래 퇴근시간이라 차가 밀리는 건지 연말이라 밀리는 건지 추측할 수 없었다. 추위에 오돌오돌 버스를 기다리며  차를 그냥 가져갈 걸 그랬냐며 후회했다. 버스가 왔는데 벌써 빈자리 없이 설 곳도 없이 만원이었다. 송년 모임이라며 맥주 한 잔은 꼭 마셔야 한다며 차를 가져오지 말자고 약속했다. 술도 좋아하지도 않는 친구들이 어쩐 일인가 싶었지만 애들이 크긴 컸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엄마들도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어찌 된 일인지 정거장에 멈춤 때마다 내리는 사람은 없고 계속 타는 사람들뿐이었다. 도로는 이미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정차된 차들을 보는 순간 버스를 타기를 잘했다며 간사하게 생각을 바꿨다.


버스 안은 만원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고요하고 적막했다. 나는 마치 버스를 태어나 처음 탄 사람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람들은 남녀노소 나이에 상관없이 눈은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었고, 귀에 콩나물을 꽂고 있었다. 나는 버스 노선표 앞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꽉 잡고 노선표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버스 타는 게 낯설기도 하고 노선을 잘 몰라 지나칠까 봐 두려웠다.



버스 안은 정거장을 지나면서 버스기사님의 언성이 커졌다.


"뒤로 좀 들어가세요."

"다음 버스 타세요."(이러시면 출발 못해요)

"앞문으로 안 내려드릴 거예요."(제발 뒤로 들어가세요)


정거장마다 승객과 실랑이하는 기사님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승객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기사님 목소리만 계속 커졌다.





예전에 학창 시절 콩나물시루처럼 버스 타고 등하교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정말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교통에 대한 기억은 좋은 것보다는 불쾌했던 기억뿐이었다. 자동차가 지금처럼 많지도 않았던 시절이다 더 사람이 많았다.





나이 들어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스스로 자동차를 운전하면서는 종종 필요해 의해 선택적으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기도 한다.  장거리를 이동할 때는 대부분 기차나 고속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편하다. 장점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버스전용차로 시간도 단축되고, 책 읽을 시간도 주어지고, 창밖을 내다보면서 사유하며 글감들이 샘솟아 나니까 말이다. 이 좋은 일을 자주 못하는 게 아쉽다. 서울, 부산으로 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일이 있을 때는 꼭 책을 챙기거나 노트를 준비한다.


바쁜 출퇴근 시간에는 대중교통이어도 어찌하지 못해 서로 불편한 마음이 느껴진다. 얼굴 표정이 조급해 보이고 자세부터 안전부절 못한다. 늦었기 때문이다.  어제 버스 안에서 약속시간에 늦을까 겉으로는 서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열심히 달렸다. 약속시간 내에 도착하려고 일찍 출발했는데 이런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속상했다.


지난겨울에 버스가 밀려서 예매한 기차를 놓친 적이 있었다. 비행기가 아니라 천만다행이지만. 친구들은 역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버스를 처음 타는 사람처럼 시간계산을 잘 못했다. 바로 출퇴근시간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 날일은 아직도 생생하다.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간신히 탔음에도 불구하고 기차를 놓쳐서 다음 기차로 서울에 간 적이 있다. 그 당시 친구들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걸어야 하나 택시를 타야 하나 고민했지만 막상 내려 대로변을 둘러보니 바로 답이 나왔다. 이미 택시 정거장에 대기하는 차가 한 대도 없었고, 전력질주해서 달려가도 약속시간 내에 갈 수 없을 만큼 시간이 지체돼 있었다. 카톡을 확인했다. 일행이 네 명이었는데 한 명만 제시간에 와 있었다.


역시 약속시간은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을 듣기 싫었는데 대중교통 처음 이용하는 사람처럼 또 계산 잘못해 늦게 도착했다. 나뿐 아니라 둘은 더 늦게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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