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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뭐야 Jan 12. 2023

<표리부동>

빨리 때려쳐라. 넌 돈도 안 되는 그 놈의 글은 대체 왜 쓰는 거냐?


하는 일 하나하나에 돈이 매겨지는 세상이야. 네가 새벽마다 쓰는 글 쪼가리가 무슨 가치가 있는데? 돈을 주고 네 글을 사가는 사람이 있기를 하니? 어디 공모전에 나가서 당선이라도 해서 상금이라도 얻어왔니? 어떤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네 취미 생활인 거 존중 못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차라리 빵 만들고, 커피 만드는 취미 있잖아? 그거라도 하면 먹을 거라도 나오지, 읽는 사람 몇 있지도 않은 글은 대체 왜 붙들고 있는 거야? 수요 없는 공급이, 독자 없는 작가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성과가 나오지 않는 일에 매달리는 게 힘들다는 거 너도 알잖아. 네 시간으로 빚어낸 것이 누군가의 눈길조차 끌지 못한다는 게 비참하다는 거 너도 알잖아. 너만 그런 일 경험했을 것 같아? 나도 그랬으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나도 한때는 여유가 있었어. 돈이 안 되는 것에 시간을 들일 여유. 돈이 안 되는 것을 해도 먹고 사는 것을 조금은 포기할 수 있는 여유. 그 때 땅 위에 여유롭게 서있던 나는, 어느새 절벽에 간신히 매달려 살기 위해 내 발목을 붙잡는 추들을 하나씩 떼어냈어.


넌 돈도 안 되는 그 놈의 글을 꼭 붙들고 가라. 계속 해라.




수험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고3때 든 기분이 간만에 들었다. 내가 쓴 시간에 가치를 매긴다는 기분. 공부에 쓰이는 시간, 나의 앞날을 위한 시간만이 가치 있는 시간으로 여겨지고 그 외의 시간들은 '가치를 매길 가치'조차 없는, 보잘 것없는 시간으로 여겨진다는 기분. 다만 그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고3의 나는 대학에 가지 못하면 죽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는 것이고, 지금의 나는 시험에 떨어져도 죽기야 하겠냐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합격에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미래의 나는 이 글을 보고 '에휴 멍청아'라고 하며 땅을 치고 있을 수도.)


물론 내 시간에 가치를 매기는 것은 나 스스로도 굉장히 조심스러운 일이다. 내가 가치 없다 판단한 순간은,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순간이 되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타인의 시간에 가치를 매기는 것은 더더욱 조심스러워야 한다. 하지만 현생에 치이는 어른이라는 간판은 어째 그 성숙한 이름에 걸맞지 않게 권위를 앞세워 나의 시간에 우악스러운 손놀림으로 가치를 매기고는 사라지곤 한다. 그럴 때마다, '저 분들도 젊었을 적에는 나와 같은 일을 겪었겠지?'라고 생각을 한다. 현실에 마음이 꺾인 그들의 모습을 동정하려고 노력하며 말이다. 물론 동정이 좋은 감정은 아니지만, 분노보다는 적어도 다루기 용이하지 않은가.


그러기에 난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서는, 한 발짝 어른에 가까워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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