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삶은 앞을 위한 삶이야, 뒤를 위한 삶이야?
왜, 한 번씩은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아? 지금을 희생해서 얻어낸 미래는 과연 행복할까. 젊음을 연료로 얻어낸 노년의 모닥불은 과연 가치가 있을까. 잘 늙고 잘 죽기 위해 사는 거라면, 빈손으로 돌아가는 길에 무엇이 그리도 중요하길래 악착같이 살아갈까.
그래도 통장 잔고를 보면, 이런 소리가 나올 틈 따위는 없어.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행복을 논할 자격조차 없는 때인데. 다 배 부르자고 하는 일인데. 내 배만 부른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배부르기 위해 하는 일인데. 그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겠냐고.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나아갔음에도, 뒤를 돌아보며 다시금 처음 질문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보면, 매번 확신이 들지 않았던 것 같아. 내 삶이 제대로 나아가고 있기는 한지. 혹시 이렇게 앞만 보고 나아가다 실패하지는 않을지. 그래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말에도 계속 뒤를 돌아보다가도, 앞만 보고 가는 이들에게 뒤처질까 허둥지둥 다시 앞을 보기를 반복했나 봐.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 행복한 삶이란 뒤를 덜 돌아보는 삶이라고. 어느 방향이건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서, 바삐 뒤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여유로이 살펴보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그게 설령 그게 젊은 날에 흐드러지게 피고 시드는 꽃이더라도. 그게 설령 다들 시들 때에 늦게 피는 꽃이더라도.
무화과면 어떡하냐고?
....그건 몰랐네.
친구에게 말을 거는 방식의 글은 원래 내 독창적인 방식은 아니었다. 전에 활동했었던 글쓰기 모임에서 참 글을 잘 쓰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편안한 글을 쓸 때에는 이 방식을 애용하셔서, '편하고 읽기 쉬운 글'을 지향하려는 나의 입장에서 참고를 하다 보니 닮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 참고한 탓에, 이러한 방식의 자기 복제 경향이 강해졌다고 느껴져 일부러 이러한 방식을 탈피하려고 최근에는 다양한 시도를 많이 했다. 가장 최근에 이 방식으로 글을 썼던 게 10월의 <무한학개론>이었으니, 벌써 3달가량이 흘렀다. 이 정도면 쿨타임 한 번 돌지 않았나 싶어 부담 없이 썼다.
수험 생활에 뛰어들게 되면 가장 많이 드는 감정이 '의심'인 것 같다. '내가 오늘을 올바르게 보냈던가'에서 시작한 의심은, 그 범위가 주, 월, 년을 넘어가 '내가 인생을 올바르게 살았던가'로 귀결되곤 한다. 이러한 의심에 깊이 빠져드는 것은 분명히 지양해야 하지만, 의심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그것대로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글을 쓰면 폭풍이 되기 일보직전이었던 의심이 다시금 가라앉곤 해서, 나름대로 건전하게 이를 해소하는 방법을 찾은 것 같다. 그러고는 오늘 순수 공부 시간을 확인하고, 새벽까지 인강을 듣고, 그러다 잠을 덜 자고, 그러다 다음 날 인강 볼 때 졸고, 그러다 목표 학습량을 못 채우고, 그러다 다시 의심이 싹트고-
그만 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