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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뭐야 Jan 26. 2023

<과외학각론>

자, 이러면 이 문장에서 수 일치를 시켜줘야 하는 진짜 주어는 뭘까?

쌤, 첫사랑 얘기 해주세요.

어떻게 넌 단 하루도 공부를 하고 싶은 날이 없냐?

하기 싫은 걸 어떡해요. 어차피 이런 글 대학 가서 보지도 않는다면서요?

너가 영어를 평생 볼 일이 없을 것 같아?

으윽, 그래도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글은 아닐 거 아니에요.

난 많이 본 것 같은데.

쌤은 영어교육과니까요.

맞긴 해.

그럼 영어교육과만 안 가면 되는 거 아니에요?

어차피 갈 생각 없잖아.

맞긴 해요.


아니, 그래, 잠깐 동기 부여 타임이나 가져보자. 너는 이 공부 왜 해?

왜긴 왜겠어요. 대학 가려고 하지.

대학은 왜 가?

어른들이 가라고 하니까요?

내가 들은 ‘대학 가야 하는 이유’ 중 두 번째로 최악의 대답이었어.

남들 다 가니까요?

그게 첫 번째로 최악인데.

그러면 무슨 이유가 있겠어요.

그치? 너가 생각해도 크게 이유가 없지?

네.

그러면 가지 마.

네?


갈 마땅한 이유가 너 스스로 생각하기에 없다면서?

네.

그러면 가지 마. 그냥 빨리 9급 공무원이나 준비해.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사람들이 대학을 가라고 하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아니, 너가 어느 분야에 전문성을 쌓고 싶으면 가는 게 대학이지, 가는 게 의무는 아니잖아?

그렇죠?

그러면 굳이 갈 이유가 없는 곳에 뭐하러 시간을 쏟아. 때려 쳐. 너가 하고 싶은 일 해.

그런 게 있으면 안 이러지 않을까요?

맞긴 한데, 알면 좀 만들어보려는 노력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K-고딩한테 바라는 게 너무 많으신 거 아니에요?

이럴 때만 K-고딩이지, 아주.

아니 그래서, 하고 싶은 게 없는데 어떻게 하라구요.

그러면 너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은 걸 골라야겠지?

그렇겠죠?

그게 뭐야?

대학 가게 공부하는 거죠?

그치.

네.

그러면 지금 뭘 해야겠어?

첫사랑 얘기 해주세요.




나는 '왜?'라는 질문에 답을 하지 않은 채 나아가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물론 일단 나아가다 보면 풀리지 않던 '왜?'가 어느 순간 풀리는 일도 있음을 요새는 자주 느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행동에 이유와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했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지 못한 채 정신없이 달려가다 뒤를 돌아봤을 때의 후폭풍이 얼마나 큰지 몸소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외를 할 때마다 '공부하기 싫어'증에 걸린 친구들에게, 나름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주며 스스로 공부의 이유를 찾게끔 만들고 싶었다. 물론 그런다고 아이들이 갑자기 공부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만.


다시금 수험생으로 돌아가고 나니, 학생들이 느꼈을 감정들을 내 몸으로 다시금 느끼기 시작한 것같다. 유튜브 쇼츠 알고리즘이 요새 전한길 영상을 보여주다가 현우진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게 '수험적합적'인 자세인가 고민하다, 급행 9호선 열차 속 사람들 틈에 끼어 나는 왜 이러한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지 당위성을 부여하다, 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퍼뜩 했다. 그래서 20분만에 완성된 것이 위의 글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풀 대화체' 양식이다. 그런데 글을 쓴 시간도, 정성도, 양식도, 무엇 하나 특출나지 않아 '뻘글'이 되지 않을까 퍼뜩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 깊이 고민하기 전에 어서 발행 버튼을 누르자고 결심했다.


내일 이 글이 삭제되면 부끄러움이 나를 이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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