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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비 May 19. 2020

7년만에 면접을 봤다.

경력단절여성의 직장 구하기

아주 어린 시절부터 대학교를 다니던 때까지도 좌절이라는 걸 경험해본 적이 많이 없었다. 공부는 어렵기도 했지만 재미있었으며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은 것에 비해 좋은 학교를 다녔다. 인생의 모든 게 쉬웠던 것 같고, 덕분에 삶이 만만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과내에서 거의 유일한 취준생이 되었다. 자만한만큼 댓가를 받았다. 그게 내가 맛본 첫번째 좌절이었다.


졸업 후 1년만에 어찌어찌 작은 IT 기업에 입사하여 일을 시작했다.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었지만 어려서부터 늘 좋아했고 흥미있던 일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야근이 많고 주말 출근이 있고 힘들어도 괜찮았다. 경력이 쌓여갈수록 인정도 받았고 스카우트 제의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다 만난 전쟁같은 임신출산육아. 왕복 네 시간에 가까운 출퇴근이 너무 고되어 미련없이 퇴사를 선택하고 출산을 준비했다. 사실 그 때는 모든 게 처음이고 감당하기 벅차서 다른 건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성적에 관계없이) 바른 모범생으로 살아왔던 나에게 육아는 새로운 것을 만나는 큰 도전이었고, 처음부터 다시하기가 없는 실전이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다.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만족하기 위해서.





육아야말로 터닝포인트였다. 결혼이 아니라.


아이가 자랄수록 괴로운 것은 자꾸만 작아지는 나를 볼 때였다. 인간의 가장 고차원적인 욕구라는 자아실현. 거창할 것도 없이 내가 할 수 있고 하고싶은 일이라면 뭐라도 상관없었다. 내 인생의 2막이 시작된 것 같았다. 드라마에 나오는 그렇게 둘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는 이상에나 있는 얘기였다. 결혼 따위는 던전 입구에도 못미쳤다.

그래서 당장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살림과 요리를 열심히 했다. 내 방도 안치워 엄마에게 늘 잔소리를 듣던 내가 쓸고 닦고 다듬었다. 사실 보람은 그다지 없었다. 어린 아이가 있는 집에서 아무리 깨끗하게 해놔봐야 뒤돌아서면 원래대로 돌아가는 게 당연했다. 그럼에도 잠시동안 깨끗해진 집을 보는 게 좋았다. 결혼 전엔 고작 라면 끓여먹기밖에 하지 않았던 나는 온갖 한식/양식/일식을 비롯해 베이킹도 했다. 쿠키나 타르트, 스콘을 굽고 카페에서나 먹을 법한 다양한 커피와 차, 버블티까지 만들었다. 카페나 레스토랑에 가지 않아도 되겠다고 말할만큼 남편도 만족스러워했다.

남들보다 아이를 잘 키우려고도 노력했다. 단순히 책을 읽어주고 미디어를 빼앗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와 많이 얘기하고 많이 놀고 많이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속삭이기를 반복했다. 혼내거나 때리기 보다 이해시키고 다독였다. 거기에 부응하듯 고맙게도 크게 다치거나 앓는 법 없이 바르고 예쁘게 자라는 아이를 볼 때마다, 다른 이들이 칭찬할 때마다 뿌듯한 건 사실이었다.

그 때의 나는 필사적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거기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러기엔 내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흙수저로 태어난 나와 남편은 돈에 얽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다가 같은 업계에 있는 남편이 일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남편이 회사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도 일하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일을 아예 안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퇴사하고 5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일하던 회사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데, 거기에서 일을 받아 용돈벌이 수준 정도의 돈을 벌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만족이 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는 (조금밖에) 못버니까, 하는 자격지심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일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아침이면 깔끔하게 차려입고 출근하고, 저녁이면 일해서 피곤하다는 핑계로 적당히 농땡이 부릴 수 있는 합리적 게으름이 탐났다. 모든 워킹맘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러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집에서 프리랜서마냥 일을 하고 있음에도 '집에서' '적게' 일하고 버는 탓에 일도 살림도 육아도 소홀할 수가 없었다. 본래 부지런하지 못한 내가 그 생활이 5년이 되니 숨이 막혔던 것 같다. 그래서 살림과 육아라는 그 신성한 일을 감히 내려놓아도 되는 명분이자 탈출구를 찾고 싶었고, 구인 공고를 찾기 시작했다. 나에겐 남들보다 제약이 많았다.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부모님은 모두 생업에 종사하고 계시고 멀리 사신다. 도움을 구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아이의 유치원 및 보육 스케줄에 맞추기 위해선 집과 회사의 거리가 멀지 않아야했다. 문제는 내가 경기 남부에 살고 있다는 것. 업계 대부분의 기업이 강남과 판교에 위치하고 있는데, 입사한다고 해도 출퇴근만 왕복 2시간 이상 소요된다. 아침 10시부터 7시까지 근무시간이라고 한다면 8시 반~9시에는 집에서 나가야 하고 밤 8~9시에나 집에 도착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미 강남으로 출퇴근하고 있는 남편과 똑같은 스케줄로 살아야 하는데, 그건 아이 때문에 불가능한 이야기다. 유치원 종일반에 속한다고 해도 엄마랑 똑같이 아침 8시 반에 유치원에 등원해서 하원하고도 육아도우미와 함께 3~4시간이나 더 보내야 겨우 엄마아빠 얼굴을 볼 수 있는데, 그 쯤이면 이미 잘 시간이라는 거다. 그렇게까지 아이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거기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달려가도 30분이 안걸리는 가까운 거리이길 바랐다.

아이 문제 때문에도 그렇지만 업계 특성상 야근이나 주말출근도 많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평일에만 출근하고 정시출퇴근이 가능해야 했다. 누군가는 아이를 봐야 하니까. 아무리 남녀평등을 외쳐도 주로 아이를 보는 건 엄마의 몫이기도 하고, 이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 엄마와 한 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아 하는 걸 외면할 용기도 나에게는 없다.

말 그대로 경력단절이 문제였다. 지금 전 회사에서 일을 받아 하고 있다고 해도 그 경력을 인정해줄리는 만무했다. 현장에서 사람들과 부딪히고 트렌드를 읽으며 일하는 것과 지금 하는 일은 동떨어져 있다고 봐도 맞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그 부분에 있어 자신감이 없는 나에게, '네가 아는 지식은 이미 구시대 유물'이라는 남편의 농담은 나를 더 위축되게 했다. 남편이 그 전부터 심심찮게 얘기해오던 '너같은 기획자 있으면 좋겠다. 우리 회사 같이 다닐래?'하는 말은 잊혀진 지 오래였다.

다니던 회사로의 복직도 생각해봤지만 거리도 멀고 새벽까지 야근하고 주말에도 연락오기가 일쑤였던 곳이어서 완곡하게 거절했다.


1년을 넘게 사이트를 뒤졌다. 가뭄에 콩 나듯 나는 공고에 입사지원서를 넣어봐도 연락이 오지는 않았다. 눈을 낮추고 연봉을 낮춰도 경력 단절 유부녀를 쓴다는 곳이 없었다. 하다못해 단순경리, 사무보조 등에 지원을 해봐도 나이가 많고 관련 경력이 없어서인지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면접.


지원서는 수십곳에 넣어봤지만 겨우 한 군데에서 연락을 받고 가서 면접을 봤다. 2년 다닌 회사를 퇴사하고 5년이 흘렀으니, 면접은 7년만이었다. 회사도 담당업무도 나쁘지 않았고 대표이사도 괜찮아 보였다. 집까지의 거리도 멀지 않았고 정시출퇴근도 가능할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면접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니고 싶었고 일하고 싶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더라. 중소기업 면접에서는 한 번도 연락받지 못한 적이 없었는데. 아마 다른 사람을 채용한 거겠지.


다시 한 번 좌절이었다. 대학 졸업 이후 취업준비를 하던 그 때처럼. 그 때와 다른 것은 나에겐 돌봐야할 아이와 집과 남편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때처럼 아무것도 안하고 늘어져서 좌절감을 맛볼 새가 없었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일을 하고 돈을 버는 평범한 사회인으로 돌아가기가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쉽게 놓지 말 것을.


일하고 싶어하는 엄마들이 등 떠밀리듯 마트와 작은 가게들에서 파트타임 형식으로 일하는 것이 이제야 와닿는다. 연락이 없구나 하고 그 회사를 포기한 그 때부터 다시 공고를 뒤적이며 조건에 맞는 걸 찾아보고 입사지원서를 넣고 있지만 여전히 아무데서도 연락이 없다. 불경기에 코로나19까지 겹친 이 상황에, 팔팔하고 번뜩이며 (회사 입장에선) 저렴한 신입들도 장벽이 높을텐데 나에게까지 순서가 돌아올 리 만무하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다시 일상.


그래도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티내지 않고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한다. 뭐랄까, 내가 맡은 소임인 양 열심히 하던 그 때와는 다르게 의욕을 잃었지만.

나는 더 이상 맛있는 쿠키나 타르트를 만들지도 않고 열심히 집을 청소하고 정리하지도 않는다. 그런 것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은 한계가 있었고,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에겐 시판 과자를 먹이고 식기세척기와 로봇청소기를 들였다.


아이를 갖기 전 했던 일은, 내가 엄청나게 사랑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분명 잘할 수 있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일이었다. 거기에서 매일 한 걸음씩 멀어져 가는 게 느껴진다.


그렇게 나는 늙어가고, 또 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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