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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비 Nov 02. 2021

화성에서 온 개발자, 금성에서 온 기획자

개발자와 기획자, 365일 24시간 꼭 붙어 살아가기


이 글은 기획자로 일을 시작하여 기획자 마인드로 12년을 살아온 것과 동시에, 개발자와의 5년 연애 후 결혼하여 6.5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경험을 바탕으로 나와 남편이 얼마나 다른가에 대해 정리하고자 하는 글이다. 개인적인 경험이기에 당연히 일반화   없다.

일적인 부분 외에 평소에는 얼마나 잘 맞는가 하면 음식이나 영화, 게임, 경제관 및 교육관 등 상당부분 일치해서 취미 - 게임이나 영화, 넷플릭스 드라마 등 - 도 함께 즐기는 편이다. 거기다 남편이 재택근무 중이라 최근 1년은 말그대로 24시간 붙어있다는 사실.

글을 들어가기 앞서, 기획자의 관점으로 서술하고 있으므로 어쩔  없이 한쪽으로 치우칠  밖에 없다는 점을 명시하고자 한다.






서비스를 바라보는 : 기술? 사람?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만든 서비스를 보고도 불편하고 느리다며 불평하는 나(38세, 백수에 가까운 기획자 프리랜서)에게 남편(41세, 나름 알만한 회사 재직 중인 개발자)은 그랬다.

이거 만들 때 최신 기술이 어쩌고 블라블라. 최신 트렌드까지는 나도 찾아보고 어느 정도 머릿속에 넣고 있다. 그치만 알 게 뭐야, 암만 최신 기술이 들어갔어도 검색 안되고 느리고 원하는 페이지가 안나오고 뭘 하나 사더라도 여러 단계 거쳐야하면 사용자 입장에선 짜증 나는데. 그 기업이 얼마나 훌륭한 개발자를 보유하고 있고 얼마나 들어가기가 힘든지에 대한 설명은 됐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만든 서비스가 얼마나 쓸만한가는 다른 문제니까. 그래서 개발자만큼이나 기획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게 내 지론이다. 이 일 저 일 다 떠맡는 잡부가 아니고. 이해가 안되는 것은 그 기업들은 분명 기획자로도 최고의 인재풀을 두고 있을텐데 왜 그런 건지 모를 일이다. (기획 외적인 부분에서의 문제라면 할 말 없다. 나도 많이 겪어봐서.)


얼마 전 엑스박스를 사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사면 무슨 게임 할 건데? 독점작도 딱히 없잖아’ 하고 물었더니 ‘할 게임은 딱히 없지만 하드웨어 스펙이 쩐다’는 답이 돌아왔더랬다. …그럼 그게 무슨 쓸모가 있냐는 내 관점에서는 포르자 호라이즌을 즐기는 아들(7세, 백수)로부터 본인의 컴퓨터를 사수하라는 의미로 사자고 했다. 엑박의 스펙과는 별개로. 스펙이 좋아서 닌텐도 스위치가 많이 팔린 건 아니지 않은가 하는 게 내 생각이었다.


하드웨어도 좋지만 게이머 입장에선 게임이 재밌어야 살 거 아닌가. 마찬가지로 최신기술도 좋지만 서비스 사용자는 편해야 쓸 거 아닌가.






한국말로 , 제발

가끔 뭔가를 질문하면 알 수 없는 외국어를 듣는 기분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수사물 미드 시리즈들에서도 흔히 나오는 클리셰다. IT인력이 요점도 없이 장황하게 기술을 설명하는 장면에서 보스가 “in English, plz” 하는 모습. 개발자와 살다보니 그건 생각보다 자주 겪는 상황이다. 간혹 남편은 일이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거나 협업에의 힘든 점을 털어놓곤 한다. 아무래도 같은 분야 종사자니까 공감을 얻기 쉽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일상 언어가 아닌 개발적인 이야기가 섞일 때면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한없이 긴 꾸중 들으며 방바닥 장판 무늬 분석하는 꼬마마냥 오늘 저녁은 뭘 해먹을까 하는 다른 생각에 빠지게 된다. 어쩔 수 없다. 나도 사람이라.


가끔은 주어도 없고 목적어도 없이 서술어만 툭 튀어나올 때도 있다. 대화는 사람과 하는 것, 내가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는 게 아니라 알아듣게 해야한다는 건 기본인데. 아마 개발자들끼리만 모여 일에 대한 깊은 얘기를 하는 일이 잦다보니 그렇게 되는 모양이다.

그간 많다면 제법 많은 개발자들을 만나봤지만 전문적인 개발용어들을 섞어가며 말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진짜 일 잘한다고 생각했던 개발자들은 나같은 기획자나 클라이언트와 대화할 땐 일반인들의 쉬운 언어로 얘기하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었는데, 그럴 때면 신뢰도가 급상승했다. 대학시절을 돌이켜보면 외계어 하는 교수님보다 쉽게 설명해주시는 교수님이 더 좋지 않았는가. (나중에 전공책을 펴봤을 때 백지가 되는 건 똑같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이런 조언을 하고 있다.

1. 기획자가 최신 개발에 대해 아무리 파봐도 개발자만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얘기해주세요. 협업관계자의 대화단절만큼 프로젝트를 어렵게 끌고가는 방법은 없습니다.

2. 서비스 뒤에 사람 있어요! 사용자들은 서비스를 볼 때 어떤 방법론을, 어떤 최신기술을 적용했느냐를 보는 게 아닙니다. 불편하고 느리면 싫어해요. (그런 이유로 ㅋㅍ 안쓰는 사람.. 저..)

3. 일정은 기획자가 정하는 게 아닙니다. 외부적인 요인(임원급의 의지나 커다란 이벤트 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오늘도 나는 최신 기술을 뒤적여본다. 개발을 좀 배워봐야 하나 하는 생각도 잠깐, 언젠가 남편이 권했던 책장에 꽂힌 자바책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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