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기다려지는 이유
'그냥 삼성폰 썼으면 이런 고생은 안 했지...'
사회초년생 시절, 5년간 잔고장 하나 없이 우직하게 제 할 일을 다했던 삼성폰이 새삼 생각나는 요즘이다. 뜬금없이 옛날폰이 그리워지는 건 다름 아닌 '기후동행카드' 때문이다.
월 6만 2천 원만 충전하면 서울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기후동행카드가 요즘 인기다. 문제는 출시된 지 얼마 안 돼 구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점! 아직은 안드로이드 기반의 스마트폰만 모바일카드를 지원하고 있어 아이폰 사용자들은 어쩔 수 없이 실물카드를 사야만 한다.
그런데 이 실물카드를 구입하는 것이 도무지 쉽지가 않다.
1월 23일 처음 출시가 될 때부터 재고부족 사태가 있었다. 그 후 부랴부랴 수 만장이 추가 제작돼 2월 7일부터 순차적으로 풀리고는 있으나 이 또한 많이 부족한 듯싶다. 나 역시 지난번(1월 말)에 이어 이번에(2월 8일)도 역시 구매에 실패하고 말았다.
2월 8일은 마침 병원 진료 때문에 회사에 오전 연차를 쓴 날이었다. '9시 진료를 받으러 가기 전, 집에서 좀 여유롭게 나와 판매처들을 몇 군데 돌다 보면 살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게으른 자의 순진한 착각이었다. 당일 오전, 판매처들을 방문하기 전 혹시 몰라 전화를 걸어 재고가 있는지 확인해 보았더니 모든 곳에서 재고가 소진됐다는 대답을 받았다.
내가 기후동행카드의 '기'자를 꺼내자마자 이미 상대방은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는 듯했다. 오전에 벌써 다 소진되었다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깊은 피로감이 묻어있었다. 아마도 나처럼 카드를 문의하는 이가 한 두 명이 아니었나 보다. 열 번쯤이었나. 각기 다른 지하철 역사에 전화를 돌린 끝에 마음을 접었다. 분위기로 보아 이미 모든 곳에서 소진된 것이 확실해 보였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풀리겠지...'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물량이 충분히 풀릴 때까지... 비록 그때까지 매번 결제될 교통비에 속이 조금 쓰리긴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늦장을 부려 기회를 놓친 것을.
그나저나 나는 왜 이토록 기후동행카드가 기다려지는 걸까.
일단 '무료환승시간 30분'이라는 은근한 압박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점이 기쁘다. 마트 쇼핑을 좋아하는 나는 퇴근을 하면 대체로 이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집에 가는 루틴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살거리를 마음속으로 정해 놓고 간다고 해도 높은 확률로 이마트에 가면 꼭 무언가 더 사고 싶은 욕구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집에 가는 마을버스를 타면 그새 30분이 넘었는지 추가로 비용이 지불되는 경우가 꽤나 자주 있었다.
교통카드를 찍었을 때 기대했던 '환승입니다'가 아닌 '띡-' 하고 또 한 번 교통비가 찍히는 안내 음성이 나왔을 때의 안타까움이란. 그래서 무료 환승 시간인 30분에 맞추느라 장을 볼 때면 늘 쫓기는 마음이 들곤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앞으로는 어슬렁어슬렁 아주 한 눈 팔 거 다 팔면서 느긋하게 쇼핑할테다. (ง •_•)ง' 속으로 외쳐본다.
기후동행카드가 기다려지는 이유는 또 있다. 마음껏 '카페투어'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너무 피곤하지만 않다면 퇴근 후 종종 카페에 들러 아이패드를 가지고 놀곤 한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카페에 가면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확실히 집중력이 생기면서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는 듯 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동안은 갈 수 있는 카페가 한정돼 있었다. 대체로 사는 곳 근방으로 말이다. 거리는 가까웠지만 뭔가에 집중하기에 썩 아늑한 카페들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멀리 가자니 적잖은 교통비가 발목을 잡았다. 좋은 분위기의 카페를 찾아 이곳저곳을 다니고 싶긴 한데 그렇다고 왕복 교통비를 쓰는 건 어쩐지 아까웠다.
그렇지만 이제는 집에서 거리가 있더라도 괜찮은 카페들을 찾아서 실컷 카페투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기후동행카드만 있다면 교통비 걱정은 없으니 말이다. 구석구석 여러 카페들을 탐방하며 내 취향에 맞는 아지트를 탐색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인기폭발 기후동행카드! 품귀현상으로 언제 만나볼 수 있을지 모르겠긴 하지만 아무쪼록 빨리 만나 '함께 이곳저곳을 동행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 기후동행카드 :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선보이는 무제한 대중교통 통합 정기권으로 1월 27일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월 6만 2천 원으로 서울 지하철과 시내·마을버스를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것이 장점. (6만 5천 원권은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까지 무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