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쇼핑 목록이 늘어나서가 아니다. 가격 때문에 고민과 비교 등으로 소요되는 시간이 늘어나는 탓이다.
고기나 달걀과 같은 단백질류는 말할 것도 없고 그나마 만만했던 채소나 과일마저 '만만치 않은 가격'이 되어가고 있음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예전에는 이마트에 도착하기 전 머릿속으로 살 목록들을 생각해 두었다가 이를 기반으로 물건들을 사가지고 나오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왠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높은 확률로 내가 생각했던 가격 범위를 훌쩍 뛰어넘기 때문이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원래는 사과와 키위를 사려고 했었는데, 가격을 보고 과일 종류를 급변경했다. 조금 더 저렴한 바나나로 말이다. 평소엔 할인이 조금씩 들어가서 몰랐는데 전혀 들어가지 않으니 사과가 한 봉지에 만 오천 원, 키위 역시 한 팩에 만 오천 원에 가까웠다. '언제부터 사과가 하나에 삼 천 원이었지?' 키위 역시 예전에는 한 알에 오백 원 정도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천 오백 원에 가깝다. 크기도 맛도 종류도 다 똑같은데, 불과 1~2 년 사이에 가격만 배로 뛴 느낌이다.
사실 나는 식료품에 있어서만큼은 돈을 아끼는 타입이 아니다. 예컨대, 달걀의 경우 가격이 배로 비쌀지언정 복지란과 유정란인지 확인해서 사고, 두부는 국산만 고르는 등 나름 품목별 깐깐한 기준을 가지고 물건을 선별해 왔다. 조금 더 비싸더라도 다 먹으면 피가 되고 살이 된다고 믿으며 좋은 것을 고집해 온 것이다.
거의 매일 이마트로 퇴근 도장을 찍는 이유도 이런 신념과 무관치 않았다. 조금 귀찮더라도 뭐든지 내 눈과 손으로 직접 고른 식료품들이어야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싱싱한 식료품들을 사들고 집으로 귀가할 때면 양손은 무거워서 낑낑댈지언정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요즘은 신념이고 뭐고 선택의 갈등이 되는 순간들이 자주 발생한다. 야금야금 계속 올라가는 물가 때문이다. 뭐 하나 만 원이 안 넘는 게 없고, 과자 하나만 사려고 해도 삼사천 원이 우습다.
그야말로 미친 물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나마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덕에 식료품 지출이 덜한 편인데도 그렇다. 만약 혼자 살았다면 이 비용이 더 부담스러웠을 텐데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후덜덜해진 물가에 장보기가 두려운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