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계약서에 사인하는 날
현재 재직 중인 회사에 입사 후 가장 놀랐던 점이 있다.
바로 인사팀의 대다수 팀원이 전 직원의 연봉을 알고(혹은 알 수) 있다는 것. 회사의 규모가 대기업만큼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수 백 명 정도의 직원수를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사팀의 팀장이나 부장 등 소위 윗 직급이 아닌 대리급에 해당하는 직원이 나의 연봉이 떡 하니 적혀 있는 메일을 보냈을 때 나는 속으로 뜨악했었다.
다른 회사들도 그럴까? 경력이 10년 이내로 그리 길지 않다 보니 지금까지 다닌 회사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이전 회사들에서는 한 가지 공통적인 운영방침이 있었다. 민감한 연봉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직원이 극소수였다는 점. 입사 합격이 되어 확정 연봉이 적힌 메일을 준 것도, 연봉 관련 문의에 일일이 답을 해준 것도 항상 팀장님이나 연차가 오래된 부장님이셨다.
이건 연봉이 가진 민감성 때문이었으리라. 아무리 친한 동료 관계라고 할지라도 절대 공유하지 않는 게 바로 연봉이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연봉만큼 은밀한 주제가 또 있을까. 직급이 같아도, 연차나 하는 직무가 비슷해도 제각각 다른 게 연봉이다. 자칫 누설될 경우 누군가에겐 불만의 불씨가 될 수도 최악의 경우 퇴사의 원인이 될 정도로 민감한 사안인 것이다.
내가 가진 업무 능력, 일의 강도 등을 고려했을 때 내 연봉이 합당한 건가? 이번 연도에 많이 오른 건가? 나 역시 매 년 다르게 마주하게 되는 연봉 인상률을 바라보면서 내가 아쉬워해야 하는 건지 감사해야 하는 건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다른 동료들은 어떠한지 사정을 알 수 없으니 비교하고 따져볼 수도 없다. 그렇다고 우리 속 시원하게 터놓고 얘기해 보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인사팀이 한없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내 연봉이 아닌 모든 직원들의 연봉을 알고 있으니 이거야 말로 엄청난 특권 아닌가. 물론 자신의 역량과 업무 성과로 결정되는 것이 연봉 인상이라지만 그래도 다른 이들의 수준과 비교해 스스로의 연봉이 어떠한지 합리적으로 추측하고 비교해 볼 수라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동료들이 지나갈 때, '저분은 직급에 비해 연봉이 꽤 높지. 능력이 뛰어난가봐' '저분은 기분이 영 말이 아니겠어. 이번 연도에 연봉동결이었지, 아마?' 하며 동료들의 말 못 할 속사정을 간파하고 있진 않을까?
2024년의 연봉 협상이 이루어진 오늘.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를 애매한 연봉 통지서를 받아 들고,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남모를 고민에 빠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