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독후감 읽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업무 중에 웬 독후감? 할 수 있겠지만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볼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사내 직원들이 올리는 독후감이기 때문이다. 회사 내부 임직원들이 함께 사용하는 그룹웨어에 들어가면 독후감을 올리는 메뉴가 있다. 독서를 하고 누구든지 이곳에다가 자유롭게 독후감을 올릴 수 있다. 글을 올리면 회사에서 자기 계발 독려 차원으로 독서비를 지원해 주기 때문에 올리는 게 확실히 이득이다.
하지만 정작 이 제도를 이용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독서비가 탐나기는 하지만 전 직원들이 보는 공간에 자신의 글을 올리는 게 영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나 역시 같은 이유로 이쪽 메뉴는 줄곧 눈팅만 하고 있다.
그래도 올리는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올린다. 대개는 한 달에 한 번. 자주 올리는 이들은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쓰기도 한다. 같은 회사 직원들이 쓴 글을 읽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특히 함께 업무를 한 이들이 쓴 글은 더욱 반갑다. 어느새 독후감을 감상하는 게 습관이 되어 업무 중 심심하면 '신규로 올라온 글이 없나' 싶어 이쪽 공간을 들락날락거리고 있다.
많은 이들의 글들 중에서도 내가 유독 기다리는 글이 있다. 바로 같은 부서 L과장님의 글이다. 항상 조용하고 예의 바른 모습의 과장님. L과장님과 나는 같은 부서이긴 하지만 같은 팀은 아닌지라 업무 교류가 많은 건 아니지만 그의 평판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다. 주변에서 얘기하기로는 일을 잘해서 여러 부서에서 탐내는 인재라고 한다.
그는 주기적으로 독후감을 제출하는 직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맨 처음 과장님의 글을 읽었을 때가 기억난다. 나는 그때 속으로 깜짝 놀랐었다. 하나의 독후감만 읽었을 뿐인데 필력의 아우라가 단번에 느껴졌기 때문이다. '며칠간 정성 들여 쓰신 글인가?' 궁금해져 그가 이전에 쓴 글들을 역주행하며 읽어 보았는데 편차 없이 모두 일관성 있게 완성도가 좋아 놀라움이 배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무엇보다 그의 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어려운 내용도 쉽고 간결하게 풀어내는 실력이었다. 군더더기 없이 자연스럽고 술술 읽히는 글. 그게 그가 쓴 글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았다. 나는 평소 독서 편식이 심한 편인데 그의 독후감을 읽고 나면 신기하게도 그 책이 읽고 싶어 졌다. 장르에 상관없이 말이다. 며칠 전에는 '재즈의 계절'이라는 재즈 관련 도서에 대한 독후감을 쓰셨는데, 감상평을 읽으면서 재즈가 듣고 싶어져 일부러 유튜브로 검색해 감상하기도 했다. 평소 대중가요만 듣던 내가 재즈를 찾아 들어볼 정도로 그의 감상문은 글맛이 좋았다. 또한 책의 핵심 내용만 잘 담아 책을 읽지 않았음에도 마치 그 책을 다 읽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들기도 했다.
누군가가 쓴 글을 보면 그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일까. 평소 회사에서는 얼굴을 마주할 기회도 대화할 상황도 없지만 독후감을 읽고 나니 왠지 어떤 사람일지 대충 알 것 같기도 하다. 평소 얼마나 책을 읽으시는 걸까. 매일 일기를 쓰시는 건가. 글쓰기에 대해 평소 고민이 많다 보니 이것저것 궁금증이 커져 간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물어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