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면 사랑은 유별나다.
어렸을 적부터 줄곳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라면을 꼽았다. 친구들의 경우 소고기, 회, 초밥, 곱창 등 가격대가 있는 혹은 자주 먹지 않는 별식을 자신의 최애 음식으로 꼽았는데 나는 평범하기 그지없고 누군가는 한 끼 대충 때우는 식으로 먹기도 하는 라면을 항상 1위로 꼽곤 했다. 엄마는 맛있는 거 못 먹고 자란 애처럼 군다고 뭐라고 그러셨지만 나의 취향은 오랫동안 한결같았다.
요즘도 배가 고플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바로 라면이다. 특히 출출할 때 어디선가 라면 냄새가 풍겨오면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다.
치킨보다도 라면, 회보다도 라면, 빵 보다도 라면. 취향이 이렇다 보니 우리 집엔 늘 라면 마를 날이 없다. 라면이 서랍 한 칸을 가득 메우고 있지만 평소엔 그림의 떡일 때가 많다. 주중에는 가급적 라면을 먹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라면을 먹고 나면 얼굴이 붓고 피부 상태도 안 좋아져 다음날 회사에서 확실히 컨디션이 안 좋은 게 느껴진다. 그래서 자제하려고 하는 편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걸 계속 참으면 이게 고스란히 화가 되고 스트레스만 가중된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과 이렇게 타협을 보았다. 매주 금요일, 일주일 중 하루는 라면 폭식을 눈감아 주기로 말이다. 금요일의 라면 파티는 그런 의미로 탄생했다. 내가 나에게 주는 작은 보상, 한 주 동안 일하고 회사 가느라 먹고 싶은 음식도 못 먹고 버틴 나를 위한 선물인 셈이다.
사실 파티라고 했지만 특별한 건 없다. 라면을 배가 통통하게 불러올 정도로 폭식을 하는 게 핵심이다. 질보다는 양이 더 중요하다. 중간에 혹시라도 부족함이 없도록 라면은 반드시 두 개 이상을 끓이며 만두, 떡, 치즈, 계란 등 그날그날 기호에 맞춰 부수적인 재료를 첨가한다.
요즘처럼 식단관리를 철저히 하는 트렌드의 기준으로 보면 조금 무식한 습관이긴 하지만 사실 나에게 이보다 더 좋은 소확행은 없다. 그야말로 소소하지만 확실하고도 즉각적인 만족감을 선사해 주기 때문이다.
물론 그 행복감이 라면을 먹고 난 뒤에도 지속되진 않는다는 점이 문제이기는 하다. 포만감이 아닌 더부룩함은 피할 수 없는 폭식의 부작용이다. 또한 다량의 나트륨 때문인지 그다음 날까지도 얼굴이 퀭하고 부어 있다. 주말이면 푹 쉬었으니 혈색도 좋아지고 얼굴이 펴야 하는데, 되려 더 안 좋아지는 데는 다 이러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라면을 좋아하긴 하지만 단점 역시 명확한지라 나는 라면에 더욱 중독되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중 한 가지는 ‘신상라면 거들떠도 안 보기’. 새로 출시된 라면을 경험하며 새로운 맛에 눈뜨고 더 큰 애정을 쌓지 않도록 처음부터 그런 가능성을 원천 차단해 버리고 있다.
그래서일까. 라면을 오랫동안 꾸준히 좋아하는데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제품들이 훨씬 많다. 누군가 내가 라면을 좋아하는 걸 알고 “OO라면 먹어 봤어? 맛 어때?”라고 물어보면 해 줄 말이 없다.
나도 궁금하고 먹고 싶기는 하다. 단지 의식적으로 시도하지 않을 뿐이다. 지금도 라면 중독 때문에 걱정인데 더 좋아지는 계기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 지금도 충분히 애정하고 있기 때문에 딱 이 정도까지가 적당할 것 같다.
수 십 년을 자주 먹는 라면이지만 매번 느끼는 첫 입의 설렘. 한 주 중 제일 좋아하는 금요일에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라면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지금. 행복이 그렇게 거창한 것만은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된다.
* 사진출처 : Photo by sq lim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