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따리 아줌마처럼 그러지 좀 마"
엄마한테 하는 가족들의 잔소리다. 가족들이라고 하지만 저 말을 가장 많이 하는 건 바로 나다.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면 온갖 짐보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오는 엄마한테 자주 하는 말이다.
10여 년 전, 외할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신 이후 줄곧 혼자 사시는 외할머니. 90세가 넘으신 고령의 나이로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여 우리 엄마는 자주 시골로 내려가신다. 일주일에 반은 서울에 반은 시골에 가 계신 것 같다.
하지만 운전을 못하는 엄마는 항상 시골에 갈 때면 버스터미널역까지 가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산까지 간 뒤, 그곳에서 또 한차례 마을버스를 타야 한다. 시골이라 마을버스는 1시간에 한 대씩 다니고 또 역에서 내려서 외할머니댁까지 20분 남짓을 걸어가야 한다.
그야말로 매주 힘겨운 여행길이라고 할 수 있다. 엄마는 자주 그렇게 다니다 보니 괜찮다고 하시는데, 편도로 3시간이 넘는 거리다 보니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나 이렇게 추운 겨울이면 더욱 오가는 길이 고되다. 칼바람을 맞으며 시골길을 걸어야 하는데,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버스를 기다리는 것도 힘들고 혹시 버스를 놓치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그런 불편함 때문일까. 요즘 시골에는 차 없는 사람이 없다. 아주 고령의 노인을 빼고 말이다. 다들 편하게 자가용을 타고 이동한다. 엄마가 걸어 다니며 고생하는 게 더욱 안쓰러운 이유다. 정말 혼자만 그렇게 다니기 때문이다.
가는 길도 고되지만 오는 길은 더욱 눈물겹다. 엄마는 서울로 올라올 때면 매번 서산 장터에 들르는데 그럴 때면 항상 이것저것 식재료를 사가지고 오신다. 외할머니댁에 갈 때 챙겼던 화장품이며 옷 등의 짐에 꽃게, 김, 새우, 참기름, 된장, 나물까지 온갖 식재료를 사가지고 오시니 백팩을 멨는데도 양손은 어느새 짐이 또 한가득이 된다.
엄마말로는 이게 시골에서는 괜찮다고 한다. 아무리 짐을 많이 들고 다녀도 괜찮은데 서울에 들어서는 순간 민망해지기 시작한다고 한다. 민망함의 시작점은 역시 고속버스터미널. 9호선을 타고 와야 하는데 짐보따리를 들고 다니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어서다. 내가 봐도 요즘 지하철에 시장바구니를 들고 타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 다들 가벼운 차림으로 다니는데 이 와중에 엄마만 2~3개의 보따리를 낑낑거리며 들고 있으니 생각만 해도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또 지하철에 사람은 얼마나 많은가. 앉는 건 고사하고 사람들 사이에 끼이고 치이는 바람에 짐보따리를 어디에 놓기도 힘들다고 한다.
무게나 힘겨운 대중교통도 그렇지만 냄새 역시 문제가된다. 공수해 오는 것들이 대부분 해산물 아니면 장류이기 때문에 냄새가 날까 계속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예전에는 서산에서 꽃게를 사가지고 오셨는데 꽂게 집게발에 가방이 터져 엄청 애를 먹었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바로 다음역에서 거의 뛰다시피 내리긴 했지만 이미 터져버린 봉지 사이로 비린내가 솔솔 풍기는 탓에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봐서 얼굴이 화끈거리고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이런 얘기를 듣고 있으면 나는 자꾸만 화가 난다.
"그러니까 왜 들고 오냐고. 서울에 먹을게 천진데!!"
엄마는 내가 이렇게 화를 버럭 내면 앞으로는 안 가지고 오겠다고 한다. 물론 대답뿐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그다음 주면 또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게 다 엄마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어 마음 한구석이 찡해진다. 엄마라고 왜 안 부끄럽겠는가. 그럼에도 아빠와 나에게 하나라도 더 싱싱하고 건강한 음식을 주고 싶어서 그렇게 하는 걸 거다. 이렇게 툴툴거리면서도 엄마가 꽂게 찌개를 하면 좋다고 한 사발을 뚝딱 비워내는 나를 위해. 또 게딱지에 쓱쓱 밥을 비벼 맛있게 먹을 아빠를 위해.
그렇게 엄마는 요즘도 9호선 보따리 아줌마가 되어 가족들에게 먹일 음식을 손수 나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