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역시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보이는 것도 많다는 의미인데 며칠 전 그 뜻을 새삼 느끼게 한 일이 있었다. 외부 출장이 있었던 날. 오랜만에 팀장님과 단둘이 점심식사를 했다. 그동안은 다른 직원들과 항상 함께 시간을 보냈기에 이렇게 둘만 식사를 하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그동안 여자들의 수다가 그리웠던 걸까. 자연스럽게 대화주제가 여자들의 주된 관심 분야로 집중됐다. 화장품, 다이어트, 식단에서부터 시작해 어느새 옷 쇼핑으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나는 30대가 되니 옷 취향이 점점 더 확고해지는 것 같아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새로운 옷 스타일을 도전하기가 꺼려진다고 말이다. 자주 가는 브랜드가 정해져 있었고, 너무 자주 가다 보니 매장 점원이 얼굴을 알고 인사할 정도가 되었다. 팀장님은 자신도 그렇다고 했다.
이렇게 한참을 옷 얘기를 하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몇 달 전 우리 팀에 새로 입사한 남자 대리님이었다. 보통 남자들이 무채색 옷을 선호한다면 그의 취향은 달랐다. 녹색부터 분홍색, 보라색까지 다소 튀는 듯한 옷을 자주 입었다. 키가 180cm를 훌쩍 넘는 큰 키이다 보니 개성 강한 옷들은 더욱 눈에 잘 띄었다. 그가 지나갈 때마다 강렬한 색상들이 허공 위를 둥둥 떠다니는 듯 해 일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곤 했다. 걸치는 옷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가죽재킷처럼 대담한 스타일도 서슴없이 시도했고 외투 역시 꽤 자주 바뀌는 듯했다.
내가 쨍한 컬러도 찰떡처럼 소화하는 그의 패션센스가 놀랍다며 얘기하고 있을 때였다. 내 말을 듣던 팀장님은 색도 색이지만 그것보다 옷의 브랜드가 더 놀랍지 않냐고 되묻는 게 아닌가.
옷 브랜드요? 어디 브랜드 입으시는데요?
그러고 보니 나는 그가 주로 어디 옷을 입는지 전혀 눈여겨보지 않았었다. 파랑, 녹색, 베이지, 버건디 등 색깔 위주로만 보았지 옷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 로고는 자세히 보질 못했던 것이다. "유대리 입는 옷들이 모두 다 구찌, 톰브라운, 발렌시아가 이렇던데? 못 봤어? 로고가 쓰여 있어서 잘 보이던데?"
고가 명품을 딱히 사본적도 관심도 없는 나이지만 팀장님이 말씀하신 브랜드는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체로 수 백만원은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화려한 줄만 알았는데 그렇게 비싼 옷들이었을 줄이야.
팀장님은 언젠가 유대리님이 새하얀 명품 셔츠를 입고 와서는 새빨간 김치찌개를 먹으며 앞치마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다 마음을 졸였다고 했다. 팀장님 역시 명품에 관심이 있으시기에 보는 족족 그녀의 레이더망에 유대리님의 명품이 걸렸었나 보다. 바로 앞에 두고도 수 개월 동안 인지하지 못한 명품 문외한인 나와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똑같은 옷을 보고도 오로지 색상만 기억하는 나와 브랜드를 정확하게 짚어내시는 팀장님. 이게 바로 관심과 지식의 차이인 걸까. 똑같은 대상을 보고도 무엇을 집중적으로 보며 또 무엇을 기억하는지 이렇게 극명하게 나뉠 수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 사진출처 : Photo by Hunters Race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