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빵이?
퇴근하고 집에 와 보니 의외의 빵들이 거실 테이블 한편을 자리 잡고 있었다.
얼핏 크루아상인가 했지만 그것보단 통통했다. 크루아상 특유의 소라 모양도 약하고 겉면이 그리 파삭파삭해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오동통한 모습이 흡사 살찐 애벌레 같기도 했다.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 보니 가운데 뿌려진 굵은 입자의 흰색 알갱이들이 눈에 띄었다.
소금빵이었다. 소금빵이 하나도 아니고 무려 여덟 개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소금빵이 우리 집에 왜...?'
우리 집은 평소 달달하고 앙금이 꽉 들어찬 빵을 좋아했다. 모닝빵이나 식빵, 바게트와 같이 심심한 빵은 어쩌다 토스트나 하면 모를까 사는 일이 거의 없었다. 집에서 가장 많이 빵을 사다 나르는 나 역시도 담백 취향은 아닌 터라 소금빵이 우리 집에 들여질 일은 더욱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집에 등장한 소금빵. 그 출처는 다름 아닌 엄마였다. 오늘 롯데백화점에 갔다가 소금빵을 보았는데, 빵이 나오자마자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너도나도 집어가길래 엄마도 사 왔다고 했다. 다른 빵들보다 2~3배는 넓은 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을 보아 매장의 베스트 메뉴인 것 같아 한 두 개도 아닌 여덟 개를 사 왔다고. 3인 가족 모두 소식좌인 것을 고려하면 며칠을 두고 먹을 양이었다.
"우리는 밋밋한 빵 잘 안 먹잖아. 저렇게 테이블 위에서 방치되다 나중에 버릴 것 같은데...?" 저 중에서 반절이나 먹게 될까. 곧 찬밥신세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금빵이 인기다. 카페부터 편의점까지 관련 메뉴를 속속 선보이고 있고 내 주변에서도 간식으로 빵을 먹을 때 소금빵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전반적으로 심심한 맛이 나는 소금빵이 그렇게 매력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니 평소 나와 입맛이 비슷한 부모님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저녁 식사 후, 거실에서 TV를 보며 예능을 보고 있을 때였다. 입이 심심했던 아빠의 눈에 소금빵이 들어왔고, 아빠는 무슨 빵이냐고 물으며 하나를 집어드셨다. "소금빵인데 엄마가 저렇게나 많이 사 왔어. 고소한 버터의 풍미와 짭조름한 소금의 조화가 좋다고 '고짠고짠'으로 요즘 인기야." 나중에 다른 사람들과 만날 때 요즘 유행하는 소금빵 정도는 알아두시는 게 좋겠다 싶어 묻지도 않은 설명을 늘어놓고 있을 때였다.
소금빵이라고…? 이거 엄청 맛있네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디저트에 있어 아빠는 나보다 더 초딩 입맛을 가지고 계셨다. 땅콩크림빵, 연유빵 아니면 꿀이 잔뜩 들어간 호떡 등을 주로 좋아하셨다. 그랬던 터라 나는 지금껏 그런 종류의 빵만 주구장창 사 왔었다. 그런데 아빠가 담백 취향이라니.
엄마 역시 아빠와 같은 반응이었고, 두 분은 앉은자리에서 각자 3개씩, 무려 6개의 소금빵을 드셨다. 평소 입이 짧아 빵 하나도 나눠드시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폭식이었다. 켜켜이 쌓여있던 소금빵 언덕은 순식간에 줄어들었고, 어느새 내 몫으론 남겨진 두 개만 덩그러니 남았다. 여기가 소금빵 맛집인가 싶어 나도 호기심에 얼른 몇 입 먹어보았지만 다른 집 소금빵과 별 차이가 없었다. 부모님은 그냥 소금빵을 좋아하셨던 거다.
놀라운 일은 또 있었다. 평소 무언가를 사다 달라는 부탁이 일절 없었던 아빠가 다음날에 소금빵을 또 사 올 수 있는지 물어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일 잔뜩 사 오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한편으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늘상 먹어오던 빵만 사 오고 새로운 메뉴를 탐색하지 않았던 것이 마음에 걸려서였다. 아빠는 땅콩크림빵이나 머핀, 카스테라를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했고, 그런 류를 자주 사다 드렸다. 요즘은 새로운 빵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출시되는데 나는 부모님의 입맛 취향을 업데이트하지 않은 것이다.
왜 진작 부모님께 새로운 맛을 좀 더 적극적으로 소개해주지 못한 걸까. 뒤늦게나마 소금빵의 매력에 눈을 뜬 부모님을 보며, 앞으로는 조금 더 세심하게 챙겨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 사진 출처 : Photo by HANVIN CHEONG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