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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알라 Feb 04. 2024

층간소음 - 같은 소음 다른 느낌

무엇이 달랐을까?


한때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단어가 있었다. 


그건 바로 층간소음. 층간소음에 대한 기사를 보면 아래층의 입장에 깊이 공감이 갔고, 누가 층간소음으로 힘들다는 얘기를 하면 그게 설령 낯선 이라도 붙들고 같이 신세타령이라도 하고 싶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당시 우리 윗집에는 중년 부부가 살았다. 나이는 대략 60~70대로 이들과 위아랫집 이웃으로 사는 건 처음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일까.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윗집이 엄청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어른들의 발망치 소리에 아이들이 쿵쾅거리며 뛰어다니는 소리, 의자 끄는 소리 등 각종 소음들의 심포니가 매주 삼일 간이면 어김없이 들려왔다. 당시 나는 그 소리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얼마나 소음에 시달렸던지 나중에는 위층에서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면 호흡이 가빠지고 가슴이 쿵쾅거릴 지경이었다.


어느 날은 너무 소음이 심해 윗집에 직접 올라가 자초지종을 설명한 적이 있다. 저녁까지 너무 시끄러운 소음은 자제해 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윗집은 기껏해야 한주에 며칠 정도만 꼬마들이 놀러 오는 건데,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구냐며 오히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처음에는 주말에만 놀러 오더니 언젠가부턴 아예 부모님 댁에 들어와 함께 살게 된 아들네 부부. 그때부터 정말이지 악몽 같은 시간이 시작됐다. 층간소음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힘든 나날이었다.


인터폰도 해보고 편지도 써보았지만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하는 수없이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당시 학생이었기에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기도 했다. 어떻게든 집에 있는 시간을 줄이고자 학원이며 독서실 등 최대한 밖에서만 맴돌다 깜깜한 자정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당시 하도 층간소음에 치여서일까. 지금까지도 나의 꿈은 꼭대기 층에 작은 집을 마련하는 것이다. 남들은 꼭대기층이 누수 문제도 있을 수 있고,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우며,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아 가격도 잘 못 받는데 무슨 꼭대기층이냐고 하지만 나의 워너비집은 여전히 탑층이다. 내가 원할 때 마음껏 고요함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의 소중함. 그것이 얼마나 값진지를 여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생각의 변화가 생겨났다. 그 변화라 함은 어쩌면 층간소음이 상대적인 것일 수도 있겠다는 것인데 현재 우리 윗집을 만나고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 시절 그렇게 층간소음으로 힘들게 했던 윗집은 2 정도 살다 이사를 갔다.  후로  번이나 주인이 바뀌었고 다행히 다들  소음 유발자는 없었기에 수년간 층간소음은 잊고 살았다.



그리고 몇 년 전, 윗집에 새로운 부부가 이사를 왔다. 이들은 30대 중반의 젊은 부부로, 부부 내외를 비롯해 각각 4살, 6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까지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윗집이 이사를 왔다고 처음 인사를 왔을 때 반가움보다는 덜컥 걱정부터 앞섰다. 아이들의 연령대로 미루어보아 층간소음을 꽤나 유발할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나의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꼬꼬마 아이들은 역시나 소음을 유발했다. 그러나 그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무엇이 달랐을까?



그 차이는 윗집의 태도에 있었다. 우선, 윗집 젊은 부부는 자신들의 집이 소음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 등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혹시 저희 아이들이 너무 쿵쾅거리지는 않나요? 그랬다면 죄송해요.” 하며 먼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말을 들으면 소음 때문에 불편했던 지난 시간들이 눈 녹듯 사라지며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실제로 아이들이 뛰기는 했지만, 젊은 부부가 자제를 시키는지 심하게 쿵쾅거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매번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고  혹시 모를 소음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모습을 보며 ‘ 그래도 주의를 기울이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보니
신기하게도 소음이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았다.



어쩌다 아이들이 심하게 쿵쾅거리더라도 ‘윗집 아이들이 오늘 기분이 좋은가 보네.’ 싶을  심기가 불편하지 않았다. 예전에  정도의 소음이 났다면, 곧바로 가슴이 쿵쾅거리며  신경이 집중되었을 텐데 말이다.


어쩌면 층간소음은 소음 자체도 문제이지만 상대방에 대한 서운함이 그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배려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기에 더 억울하고 화가 난다고나 할까. 반면, 윗층이 조심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면 소음의 데시벨이 무시할 수 있을 수준으로 여겨진다. 고막을 찌릿찌릿 건드리는 소음 역시 폭력이 아니라 그냥 윗집이 살아가는 일상의 자연스러운 소리로 받아들여지게 된다는 걸 깨닫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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