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달콤이와 달콤쌉쌀이가 만나 찰떡궁합
요즘 저녁마다 즐겨 먹고 있는 간식이 있다.
바로 꿀자몽이다. 꿀자몽이라는 말은 자주 쓰이는데 내가 만드는 방식이 정식 레시피를 따르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먹는 방식은 꽤나 단순하다. 우선 자몽의 하얀 껍질을 일일이 벗겨 알맹이만 모은다. 그런 뒤에 알맹이에 꿀을 듬뿍 부어 먹는 것이다. 붉고 탱글탱글한 알맹이가 혹시라도 터질세라 조심조심하며. 꿀에 절여진 자몽을 입에 넣으면 쓴 맛은 옅어지고 달콤함은 극대화 돼 자몽 풍미 가득한 달달함을 맛볼 수 있다.
내가 자몽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아마 미국에서의 유학 생활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대학교 3학년 시절, 휴학을 하고 샌디에이고로 5개월 동안 유학을 떠났다. 어학연수 목적이었다. 당시 부모님이 매 월 보내주시는 돈으로 어렵지 않은 유학 생활을 보냈다. 하지만 나도 양심은 있었던지라 최대한 돈을 허투루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건강은 챙기면서 값싸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뭐가 있을까?
찾던 내 눈에 띈 과일이 바로 자몽이었다. 오렌지보다 크기는 훨씬 큰데 가격은 저렴했다. 캘리포니아산 자몽이 유명한 것 처럼 많이 생산되기도 하거니와, 자몽의 씁쓸한 맛 때문인지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였던 것 같기도 하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 씁쓸한 맛에 익숙해지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한두 번 먹다 보니 어느새 자몽 특유의 향과 맛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먹다 보니 오히려 오렌지보다 나았다. 오렌지는 너무 단데 자몽은 새콤달콤하면서도 끝맛이 쌉쌀해 오히려 깔끔하고 질리지 않았다. 그렇게 자몽의 매력에 빠져 미국에 있는 동안 하루에 한 개 정도는 꼬박꼬박 자몽을 먹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는 굳이 자몽을 찾아 먹지 않았는데, 얼마 전부터 자몽이 다시 먹고 싶어 졌다. 주로 자몽을 구입하는 곳은 이마트. 이마트에서는 이스라엘 자몽을 주로 취급하는데 11월부터 4월까지가 나는 철이라 그런지 세일도 잦았다. 그래서 한두 번 사 먹다 보니 요즘은 아주 저녁식사 후 자몽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루틴이 되었다.
워낙 많이 먹어서일까. 자몽을 고르는데도 어느새 나름의 노하우가 생긴 듯하다. 우선 나는 자몽을 고를 때면 손으로 감싼 뒤 가볍게 손바닥 위로 5cm가량 통통 던져 보며 무게를 가늠해 보곤 한다. 과즙양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과즙이 꽉 차 있는 자몽은 무게부터 다르다. 꽤나 묵직하다. 또 한 가지 고려하는 요소는 껍질이다. 껍질의 질감이 한라봉처럼 두껍지 않고 천혜향처럼 살짝 얇게 느껴지면서도 반짝반짝 광이 흐르는 자몽을 골랐을 때 대체로 맛이 좋았다.
오늘도 저녁을 먹고 자몽의 껍질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벗기며 꿀자몽을 준비해 본다. 주황빛 붉고 통통한 알맹이가 제법 먹음직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