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낫네
챗GPT은 정말이지 양파 같은 기술인 것 같다. 까도 까도 놀라운 잠재력이 발견되니 말이다. 문맥에 맞게 논리적으로 글만 잘 써주는 줄 알았던 챗GPT. 알고 보니 번역도 아주 수준급이었다.
이는 직접 사용해 보고 느낀 점으로 나는 오늘 회사에서 업무차 챗GPT를 처음 사용해 보게 되었다. 실제로 사용해 보니 무엇이 달랐을까. 오늘의 감상평을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존 번역기와는 또 다른 신세계' 였다고 말이다.
현재 내가 재직하고 있는 회사는 제품 및 서비스를 해외에도 판매하다 보니 국문뿐만 아니라 영문 홈페이지도 같이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콘텐츠를 발행할 때 국문은 물론 영문도 함께 업로드를 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영문으로 글을 올리는 것이 부쩍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영어에서 손을 놓은 지가 오래되면서 영어로 무언가를 번역하는 일이 점점 버거워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업계 특성상 다루는 주제가 IT다 보니 글은 어려웠고 번역은 꼬이기 일쑤였다.
시중에 파파고나 구글 번역기가 있다고는 하지만 정답이 될 수는 없었다. 물론 내가 직접 다 하는 것 보다야 나았지만 어색한 문장이 자주 눈에 띄었다. 특히 문장이 길어질수록 더 문제였다. 주술 호응도 안 되고 읽어보면 원문을 알고 있는 나조차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먹을 때가 많았다. O-O?
오늘도 비슷한 이유로 고민을 하며 친구와 카톡을 하고 있을 때였다. 친구가 번역이 어려우면 챗GPT를 이용해 보라고 하는 게 아닌가. 어색하게 번역된 글을 복사해다가 챗GPT에 붙여 넣고 '자연스럽게 다듬어줘'라고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봤자 파파고 수준 아니겠어?
'번역을 두 번 돌렸다가 문장만 더 꼬이는 거 아니야?' 반신반의 하긴 했으나 그래도 무료이니 시도나 해보자 싶어 친구의 조언대로 따라 해 보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과장을 조금 보태 원어민이 한 번 첨삭해 준 것처럼 문장들이 바뀌어 있었다. 파파고는 콩글리시 같은 느낌이 강했다면 챗GPT는 원어민 스타일이었다. 번역에 걸리는 시간도 몇 초 밖에 걸리지 않아 정확성뿐만 아니라 효율성 역시 나무랄 데가 없었다. 지금까지 수년간 고생해서 배운 내 영어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파파고가 글을 이해하지 못하고 억지로 번역하는 느낌이 강했다면 챗GPT는 달랐다. 마치 글의 내용을 속속히 파악하고 쓰는 것 같달까. 내용이나 흐름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특히 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것만 있으면 책 한 권을 번역하라고 해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처음엔 앞으로 업무를 할 때 편해지겠다 싶어 기뻤다. 하지만 계속 번역기를 돌려 보고 그 놀라운 잠재력을 깨달은 순간 기분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어쩐지 씁쓸한 마음마저 들었다.
더 이상 영어라는 외국어가 예전만큼 큰 경쟁력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외국어를 마스터하려면 십 년도 넘게 꾸준히 학습해야 하는데,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물론 회화는 다른 영역이지만 적어도 번역에 있어서 만큼은 확실하고 간편한 솔루션이 생긴 것임에는 틀림없어 보였다.
내가 외국어를 전공한 탓에 더욱 그렇게 느꼈을까. 업무상의 효율성을 얻은 대신 작지만 나름 소중했던 능력치 한 개를 뺏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이 복잡했던 하루였다.
* 사진출처 : Photo by Emiliano Vittoriosi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