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마주하는 것이 시작이다

왜 살아야할까 고민할 때 글을 썼다

by 민트러버

<한 겨울밤의 꿈>의 연재가 끝났습니다.

후속 편으로 <빛으로 걸어가는 중입니다>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너무 아픈 일이었고 덮어버리고만 싶은 일.

굳이 겪지도 않아도 되는 불시험을 통과하게 하셨던 이유를 아주 조금씩 알아가면서 일어나고 풀어지게 되는 일들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최근 통독방 성경말씀은 욥기의 말씀이다. 42장으로 마무리되었다.

성경에는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요셉, 다윗, 욥 등


욥도 얼마나 억울했으면 정죄하는 친구들에게 나는 잘못이 없다면서 계속 자기 자신에 대해 항변을 하고 있다. 밑바닥의 감정을 느낄 때 내가 살아났던 유일한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아픔을 마주하고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다시 바라볼 때였다.


내 삶에서 엄청난 일을 겪고 '우울'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사람이 '우울'이라는 늪에 빠지게 되니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왜 살아야 하지 라는 생각이 가득 찼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날 정도로 모든 것이 다 무너져서 황폐한 곳에 나 홀로 버려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내가 그렇게 기도한 결혼을 이렇게 처참하게 망가뜨리게 하신 것은 하나님 때문이야."

"모든 것이 내 삶 속에서 밑바닥이야.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왜 살아야 하지."


원망과 불평이 한가득이었다.


어둠의 터널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괴로운 것 하나가 사람들에게 오는 연락이었다.

위로의 연락이 아닌 그냥 일상적인 안부의 연락들은 괴로웠다.

나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야 할 수도 있으니까.


"00아 잘 지내?"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

"이번 주 00 결혼식에 와?"


사실 어제도 결혼한다고 청모(청첩장모임) 하자고 하는 대학동기

날도 안 잡았는데 내년에 결혼하게 되었다고 자랑하려고 연락온 전 직장 회사후배


아직까지는 힘든가 보다. 내 결혼식 때 와줘서 축하해 줬는데, 나의 일어난 폭풍 같은 일들을 모르는 사람들을 마주해서 마음이 불편해지고 싶지가 않아서 마음이 또 어렵다.

대인기피증이 왔었나 보다.


그리고 이상하게 직장도 될 법한데 자꾸만 다 떨어졌다.

심지어 가장 최근에는 입사할 때 채용검진을 하게 되는데, 채용검진결과까지 제출했는데 떨어졌다.

너무 허무했다.


그리고 다른 면접 본 곳은 누가 봐도 내가 했던 업무이고, 나의 자리인데 떨어졌다.

자랑이라고 들릴 수도 있지만 내가 했던 방송 편성 PD의 직종에서 거의 9년, 10년을 일했고, 해당 직무의 일들은 거의 다 해봤고, 팀장이라는 관리직까지 해봤기에 웬만한 곳이면 합격이 되는 것이 보편적인데 일어나는 일들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마음이 괴로웠다.

자존감도 자신감도 자꾸만 떨어졌다.

'당당하게 멋지게 살아갔던 나였는데 왜 이런 것일까'라는 생각이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축하해줘야 하는 일들의 연락이 오면 너무 마음이 어려웠다.


'나는 직장도 내 앞길도 모르겠는데, 다들 사회적으로 자리도 잡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왜 나는 계속 뒤처지고 퇴보하는 것 같을까. 왜 내 인생이 이렇게 된 것일까. 왜 살아야 할까.'


누군가 힘들어하면

'00 이는 직장이라도 번듯하게 다니잖아..'

'00 이는 결혼도 하고 잘 살고 있잖아.'

'00 이는 아이도 낳고 뭐가 그리 힘든 걸까.'


사람에게 각자의 힘듦을 비교할 수 없다.

나도 내 마음이 온전히 회복된 상태가 아니다 보니 내가 현재 가지지 못한 것에 비교하다 보니 나의 부족한 부분만 확대되어서 보이나 보다.

질투와 미움도 올라오게 되었다.


이런 우울해하고 투덜거리는 내 입술의 이야기를 듣는 아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하나님께서 너의 다음 스텝을 여시기 전에 네가 지금 쉬고 준비되는 시간이야. 그동안 열심히 달려왔잖니. 다른 사람들의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비교하지 마."


인생의 밑바닥의 감정과 상황들을 겪고 그때 만난 것이 '글쓰기'였다.

30살 병원에서도 글을 쓰고, 퇴원해서는 음악을 만나서 회복이 되었다.

이번에도 '글쓰기'를 통해 나를 만났고, 만나고 있다.




'글쓰기'의 첫 시작은 아픔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힘들었던 이야기를 끄집어내야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덮여있던 것들을 끄집어내서 하나씩 다시 정리하고 그때 느꼈던 감정, 묵혀있던 생각들이 또 나를 덮어버린다. 하지만 신기루처럼 덮어버렸던 것들이 글을 쓰면 어느 순간 가라앉고 잠잠해진 것을 발견했다.


글을 쓰고 겪은 어려운 일들을 말로 풀었다.

사람들은 어려운 일들을 대게 덮어버리는 경향이 많다.

나도 마찬가지다.

좋은 점만 드러내고 싶지 안 좋은 일이 뭐가 좋다고 이야기하고 싶을까

그리고 가십거리가 될 것이고,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 아닐까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글을 쓰고 말을 했다.

내 안에 독을 품고 있기가 싫었다.

아픔을 마주하고 인정하는 것이 이렇게

아픔을 해소하려면 마주해야 한다.




아픔을 마주하면서 나는 내 안에 있는 '깊은 외로움'과 마주하게 되었다.

사랑받고 인정받아야 하는 욕구가 강해졌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러한 내 모습이 나타났었다.

그리고 결핍을 채우기 위해 바쁘게 지내고, 계속 성장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스스로에게 주었다.

나를 사랑해 주기보다 스스로에게 계속 '더 잘해야 해!'라는 마음으로 성취, 목표로 몰아붙였다.

물론 일어날 수 있는 '동력'이 내 안에 있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다.

아마 '성취감'이 나의 핵심가치이기 때문에 그러한 '동력'이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소중한 자산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나를 좀 더 아껴주고, 사랑해 주고, 그럴 수도 있다, 보듬어주고, 지켜주었다면 어땠을까..'

이제라도 이런 내 모습을 알게 되어서, 발견하게 되어서 감사하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말씀과 예배를 통해서 하나씩 다시 성벽을 재건 중이다.

"re-building"

이런 일을 허락하신 이유를 아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이곳에 써 내려가야겠다.

고난 중에 있는 목마름은 반드시 확장의 축복으로 이어진다는 말씀이 하나씩 현실이 되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