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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로망 Oct 27. 2021

곱셈을 위한 덧셈

아직 곱셈할 준비가 안 된 나를 위하여

 상사들의 수다를 귀동냥하고, 부모님과 식사를 하며 세상사를 듣노라면 삶이 이보다 더 팍팍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얘기할 때, 모두가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덧셈보다 곱셈이다."

 회사에서 주는 월급은 덧셈이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버는 돈도 덧셈이다. 이렇게 해서는 원하는 만큼 돈을 모으는 것이 절대 불가능하고, 가진 돈을 곱셈으로 불릴 줄 알아야 숨통이 트인다는 뜻이다. 가장 보편적이고 접근하기 쉬운 방법으로는 주식이 있다. 코로나19가 시작된 후 많은 사람들이 주식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제 주변에서 증권계좌를 개설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 정도다. 수많은 주식 관련 도서와 기사, 정보가 쏟아지고, 몇 천만 원을 단 몇 개월 만에 벌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니 '나도 한 번?'이라는 심리가 작용한다. 소위 최고의 '뻥튀기'는 부동산이지만, 최소 여유금 1~3천만 원은 있어야 부동산 문이라도 두드려 볼 수 있어 진입장벽이 높다. 그렇다 보니 10만 원 안팎으로도 곱셈의 경제활동이 가능한 주식에 너도나도 몰리는 것이다.

 나도 주식과 부동산으로 부자가 되는 상상을 줄곧 해왔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그런 꿈을 안 꾸는 사람이 드물다. 10만 원 언저리의 주식 몇 주를 사고, 부동산 관련 도서를 읽고, 청약사이트를 열심히 돌아다녔다. 1년 간 이 행동을 반복하자 같은 패턴이 정형화됐다. 처음에는 큰 꿈에 부풀어 공부한 하면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10년, 20년 이상 관련 업종에 종사한 전문가들도 해내지 못하는 일들을 내가 해내고 수십억 대 부자가 되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나는 개미 알(개미도 아니다)이고, 초짜여서, 원하는 자리에 도달하려면 긴 시간 인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 주머니 사정으로는 곱셈은 아직 엄두도 못 내는 것이다. 이때 매너리즘에 빠진다. 아무리 노력해봤자 우물 안 개구리에서 멈출 것이라는 현타가 뇌를 지배한다. 그때부터는 경제와 관계없는 가벼운 콘텐츠만 찾는다. 웹툰, 유튜브, 소설 등을 보다가 어느 순간 '부자가 되는 법' 따위의 내용을 발견한다. 다시 큰 꿈에 부풀어 정보를 탐색한다.

 세 번 정도 이 과정을 반복하자 나는 조급해졌다. 독립은 다가오고 부모님의 건강은 점점 안 좋아지는데, 난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매일매일 덧셈만 하고 있었다. 하루빨리 통장에 수십 억을 꽂아야 한다는 생각에 안달이 나 있던 어느 날, 가계부를 정리하다 비상금을 확인했다.

 '6백만 원!'

 첫 취직에 성공하고 가장 먼저 이런 결심을 했다. '내 월급의 3배를 비상금 통장에 넣자'. 구독하는 경제 뉴스레터에서 비상금이 월급의 3배는 되어야 한다는 구절을 읽고 세운 계획이었다. 하지만 최저시급에 가까운 월급에서 생활비와 적금을 빼면 남는 금액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라면 절대 부자가 될 수 없을 것이란 불안감에 빠져있던 내가, 어느새 월급의 3배를 비상금으로 모은 것이다! 그 숫자를 본 순간, 내 가슴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든든함과 뿌듯함이 자리 잡았다. 다른 사람들이 주야장천 떠들던 '천만 원 이하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메시지는 내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 덧셈의 힘을 깨달은 것이다.

 어린아이가 산수를 배울 때 아무도 곱셈부터 가르치지 않는다. 덧셈도 모르는 상태에서 곱셈을 가르쳐봤자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이는 숫자를 익히고 덧셈과 뺄셈을 할 줄 알게 된 후, 그제야 곱셈과 나눗셈의 원리를 이해한다. 이 순서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으며 오히려 뒤바꾸는 사람이 이상한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정작 성인이 된 우리는 왜 곱셈부터 정복하고 싶어 안달일까? 아직 덧셈도 제대로 못하면서 말이다.

 내가 보기에 투기는 가짜 곱셈이고, 투자는 진짜 곱셈이다. 덧셈을 완전히 이해하지 않고 시작한 곱셈은 가짜 곱셈, 즉 투기에 불과하고, 그건 금세 신기루처럼 사라질 테다. 반면 진짜 곱셈인 투자는 긴 시간 인내한 만큼 긴 시간 효과를 지속한다. 이 '진짜 곱셈'을 완벽히 다루려면 덧셈부터 완벽히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 곱셈이 가능한 곳을 고를 안목이 생긴다. 곱셈이라고 생각했던 투자가 사실은 뺄셈, 심하게는 나눗셈인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한다. 그 길을 피하기 위해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그 뒤로 나는 조급해하지 않는다. 지금은 덧셈을 실천하며 곱셈을 배우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초짜일 때 덧셈의 효과와 그것이 주는 깨달음을 온몸으로 체득해두면, 후에 곱셈의 길을 찾았을 때 제곱근과 방정식까지 막힘없이 풀 수 있을 것이다.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내가 고통스럽게 습득한 지식을 편안하게 받아먹기만 하면 된다. 아마 미래의 나는 곱셈을 공부하는 와중에도 덧셈의 끈을 놓지 않은 현재의 나를 대견하게 여기며 오늘을 기쁜 마음으로 회상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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