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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로망 Oct 22. 2021

게걸스러운 글 읽기의 즐거움

  '독서'라고 하면 사람들은 정적이고 평온한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책 읽는 사람의 속사정은 물 밑으로 정신없이 물갈퀴를 움직이느라 바쁜 백조와도 같다. 약간의 손동작과 눈 굴림만 필요한 겉모습과 달리, 뇌는 중구난방으로 사고하며 부풀어 올랐다 축소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나는 정말 큰 깨달음을 주거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법한 문장을 발견할 때마다 뇌가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날뛰는 느낌을 받는다. 그때마다 내 뇌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야, 이런 발상이 있었어? 나도 할래! 내보내 줘!"

 지가 못했던 걸 다른 뇌들이 해냈다고 생각하니 부러우면서도 안달이 나 방방 뛰는 게 귀엽다. 나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여러 분야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다. 그렇다 보니 내가 글을 읽는 방식은 게걸스럽다. 분야에 관계없이 일단 재미있어 보이면 다 펼친다. 재미있어 보이는 이유도 여러 가지다.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제목에 꽂혀서, 작가를 좋아해서, 서평이 그럴듯해서 등등. 어떤 이유로든 일단 펼치고 나면 정신없이 그 세계로 빠져든다. 그렇게 여러 세계에 빠져드는 동안 내가 '독서가 즐겁다!'라고 느낀 이유를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1. 전문 지식을 쉽게 얻는다

 어렸을 때부터 누구나 가지고 있는 환상인 '과학계 발전에 이바지하는 연구원이 된 나', '밤낮으로 환자를 돌보는 의사가 된 나', '인권을 수호하는 정의의 변호사가 된 나'가 내게도 있다. 이 수많은 자아들을 충족시켜주기에는 내 머리가 그만큼 비상하지 못했고, 천재적인 두뇌를 뛰어넘을만한 노력을 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인생을 바쳐야 하는데, 인생은 한 번인 데 비해 내 관심을 끈 분야가 너무 많다.

 그러나 이제는 가만히 앉아서 남의 지식을 제공받을 수 있는 시대. 저명한 지식인들은 너도나도 본인이 발견한 정보를 먹기 좋게 요리해서 떠먹여 주느라 바쁘다. 덕분에 그들이 인생을 바쳐 써낸 결과물을 나는 책을 통해 편하게 습득한다. 물론 그 지식의 깊이는 차원이 다르지만, 내가 도달하지 않은 지점에 깃발을 꽂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기쁨이 남다르다. 


 2. 내 시선이 닿지 않은 곳까지 볼 수 있다

 솔직히 나는 생각이 깊지 않다. 잡생각을 얕게 많이 한다. 때문에 자칫하면 콘텐츠를 단편적인 시선으로 소비하고 마는 경우가 생긴다. 이를 보완하고자 나는 특정 콘텐츠나 현상을 해석한 글들을 즐겨 읽는다. 영화를 보면 여러 사람들의 소감을 찾아보고, 책을 다 읽고 그 뒤에 서평이 있으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읽을 때는 소설보다 뒤편의 해설을 더 집중해서 읽은 적도 많다. 

 그들이 나로서는 설명하기 어려웠던 감정을 정의해 줄 때,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장면을 짚어줄 때, 작가의 의도를 핵심만 파악해 긁어줄 때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나의 시선으로는 알 수 없던 정보와 사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이 아우러져 내 생각의 폭은 넓어지고 그 콘텐츠는 더욱 가치를 발한다. 


 3. 읽을수록 더 읽고 싶어지는 마력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건 독서의 가장 매력적인 특징이다. 희한하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읽어야 할 책이 늘어난다. 마르지 않는 샘물, 아니, 파도 같다. 서핑을 제대로 배워 본 적은 없지만, 작은 파도를 타다가 엉겁결에 만난 더 큰 파도를 타게 된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인다. 예를 들어 경제도서를 보다 보면 이 현상을 해석하는 인문도서도 읽고 싶다. 인문도서를 읽다 보면 인간의 심리가 궁금해져 심리학 도서를 둘러본다. 게다가 대부분의 저자는 독자가 책을 펼친 순간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전달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에는 저자가 인상 깊게 봤거나 이 책에 다 담지 못한 정보를 다룬 도서도 포함된다. 헐레벌떡 튀어나와 "제발 이 책도 보세요"라고 강권하는 저자들을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이미 내게 양질의 지식을 전달한, 믿고 보는 지식인인데. 아예 추천도서목록을 부록으로 붙이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독서의 기쁨(김겨울)' 같은 책 예찬 도서를 읽게 되면 리스트는 미친 듯이 늘어난다. 책이 책을 낳는 셈이다.

 '읽고 싶은 도서 목록'이 끝도 없이 가지치기하는 광경은 투자처에 넣어둔 돈이 자가 증식하는 것과 같다. 정말이지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평생 누릴 수 있다니. 이건 축복이다.


4. 지적 허영심에 빠져들며 자존감이 올라간다

 책 읽는 사람에게는 특유의 허영심이 존재한다. 일단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진입장벽이 높으면서도 모두들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대단하다'는 시선이 따라붙는다. 인정과 칭찬이 담보되는 취미이다 보니 한 번 재미를 붙이면 순식간에 몰입한다. 그 몰입의 이유에는 분명히 자신에 대한 평판도 포함돼있다. 애초에 이 평판 때문에 독서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다독가인 내 친구는 '책을 열심히 읽는 나'에 취해 아무 책이나 들고 다니다가 독서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책을 읽다 보면 어떤 형태로든 성장한다. 완독 할 때의 성취감, 다독한 후의 정보력, 탐독할 때의 집중력을 시시때때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나를 성장시키는 기분은 정말이지 기가 막히게 행복하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지면 자존감이 저절로 올라가는 현상을 체험할 수 있다. 물론 허영에 들뜬 마음은 양날의 검이라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 높은 허영심과 자존감이 다른 사람의 자아를 침범하려 하는 순간 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적고 보니 나는 내가 한계에 부딪힌 일들을 책을 통해 보완한다는 점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얻는 것 같다. 사실 내가 독서라는 행위에서 느낀 즐거움에 비해 설명이 너무 보잘것없어 부끄러울 지경이다. 한 아이돌 그룹의 열성팬인 친구가 내게 밤새 그 팀을 영업하고도 아쉬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역시 감정을 언어로 구체화시켜 정갈하게 표현하는 일은 참 어렵다.

 어찌 되었든 내가 책을 즐겨 읽는 한, 책 읽는 즐거움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표현력을 자랑하는 어느 날, 지금보다 깊고 풍부한 언어로 독서의 즐거움을 다시 한번 영업해야겠다. 그때 내가 쓸 글을 지금 미리 읽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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