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질체력의 회사생활 해내기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조건을 가진 사람들을 보며 자극을 얻기도 하고 위안을 얻기도 한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으며 나 역시 그랬다.
그녀는 여러 차례 갑상선 암 재발을 겪으며 치료하기를 반복해 왔는데, 깊게 말은 안 하지만 그러면서 좌절감도, 피로감도 느꼈을 거다.
아마도 나보다 훨씬 더 겁도 났을 거고, 의기소침해지기도 했을 거다.
그런 그녀가 이야기했다.
건강하기만 위해 살지는 않을 거예요.
정확한 문장은 기억하기 어렵지만, 그 의미만큼은 뇌리에 강하고 깊게 박혔다.
공황장애나 미주신경성 실신을 이유로 점점 더 사회에 나를 내보이기보다 집으로, 편한 곳으로, 혼자인 곳으로 나를 가두고 보호하는 방향으로 흘러 왔다.
지금도 나는 안전한 집이 좋고, 사람들의 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각지대가 좋고, 격한 분위기보다는 편안한 분위기가 좋고, 쓰러져도 다치지 않을 누워있는 자세가 좋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잔뜩 애를 쓰며 살아오게 되었고, 그런 날 지루하다는 듯 친구는 "넌 너무 안전하고 코지한 것만 찾는 것 같아."라고 말한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당시에는 '넌 날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어.'라고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결국엔 맞다. 난 너무 안전하게만 날 가두어왔다.
건강. 굉장히 중요하다.
행복과 직결되기도 하고, 건강이 받쳐줘야 나의 경험의 질과 폭도 훨씬 커지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건강'과 '안전'만을 위해 살다 보면, 오히려 내가 내 행복과 그것을 만들어 줄 경험들을 제한하게 되는 것 같다.
수년간 자신감이 저하된 나에게는 '까짓것, 일어날 일은 일어나.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고, 안되면 또 별 수 없는 거야.'와 같은, 혹은 '그래! 해보자! 될 대로 돼라!'라는 정신이, 어느새 사라져 버렸던 것 같다.
두려운 마음은 여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일을 만들어보고, 바깥세상에 나를 노출해 보는 연습 겸, 도전거리들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우선 회사를 다니며 MBA를 도전했다.
회사만 다니기도 벅찼던 내가, 회사를 마치고 밤늦게까지 공부라니, 게다가 한 시간의 회의도 힘들던 내가 그 오랜 시간 강의실에 갇혀있겠다고 생각하다니?
이전의 나에게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우선 합격하고 고민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정신 차려보니 지금은 어느덧 졸업한 지 수년이 흘러있다. 심지어 장학금도 타고 말이다.
'난 미주신경성 실신이나 공황장애가 있으니 술을 마시면 안 돼.' '혼자 멀리 여행 가는 건 위험할지도 몰라. 누가 내가 쓰러지거나 곤란한 상황에 도와주겠어?' 같은 생각도 잠시 뒤로 미뤘다.
운동을 늘리면서 컨디션이 좋아진 영향도 있지만 술도 잔뜩 마셔보며 내 주량도 확인하고, 그때의 증상도 확인해 보았다.
해보지 않았다면 술을 마시면 내가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술이 주는 즐거움 또한 맛볼 수 있었을까?
'격렬한 운동은 하지 마세요'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던 내가, 있는 힘껏 손발이 떨리도록 운동도 하며 체력을 길렀고, (물론 기본적으로 담당의의 가이드를 잘 따라야 한다.)
조금은 불안하지만 혼자 비행기를 타고 한 달 동안 긴 여행 길도 떠나 잊지 못할 인생의 경험도 남겼다.
비단 작가의 말 한마디로만 내가 변화된 것은 아닐 거다.
내 주변의 수많은 지지와, 자극 덕분에, 무엇보다 내가 변하고 싶었던 마음이 바깥으로 날 꺼내었다.
아직도 나는 만일의 사태가 두려워 운전도 못하고,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이 불편한, 일상이 두려움 투성인 스스로를 가두어두는 사람이지만, 깨달아가고 있는 과정임은 분명하다.
무엇이든 일단 해라. 그러고 나서 생각해라.
날 가둬두고 건강만 하기 위해 살기엔 인생은 짧고 내가 경험할 것은 무궁무진하니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훨씬 강하고, 대처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바로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