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선데이 에세이 주제는 '편지'입니다. 지난 글에서 가족과 지인들의 편지 이야기를 간간히 한 적이 있었기에 오늘은 구체적인 에피소드보다는 편지 그 자체에 대해 쓰고 싶었습니다. 저는 몇 해 전 편지함에 보관했던 편지들을 구멍 뚫어 바인더에 묶어두었습니다. 책처럼요. 그 편지들을 다시 읽으며 편지에 대한 단상을 펼쳐봅니다.
'편지'라고 쓰고 '마음'이라고 읽는다. 집전화 밖에 없던 시절 편지는 마음을 전하는 최고의 도구였다. 말주변이 없고 글로 소통하기를 좋아했던 나는 편지를 많이 썼더랬다. 보낸 편지만큼 받은 편지도 많았다. 편지가 마음을 눌러쓴 것임을 알기에 다른 사람이 보낸 마음이 너무 소중해 버리지 못하고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그래서 나의 편지함에는 카드, 메모지, 긴 편지 등 다양한 손글씨들이 있다. 마음이 헛헛하고 힘들 때마다 그 소중한 마음들을 꺼내보았다. 오래된 일기가 과거의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거라면 오래된 편지는 나를 향한 타인의 사랑을 확인하며 미소가 번지는 일이다. '말'은 하는 순간 사라지지만 '편지'는 종이라는 물질에 담긴 소중한 보물로 남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주고받은 친구들의 편지, 힘든 시절 서로를 응원하던 고3 친구들의 편지, 딸을 향한 엄마의 사랑 편지로 가득했던 편지함에 제자들의 편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늘어난 편지만큼이나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편지 받기를 얼마나 좋아했으면 결혼 후 남편에게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선물 대신 손 편지를 써달라고 했을까. 평생 편지라는 것을 써본 적이 없던 남편은 이 어려운 숙제를 해내곤 했다. 처음에는 인터넷에 떠도는 좋은 글을 참고했으나 해가 갈수록 편지의 내용은 남의 글이 아닌 남편의 글이 되어갔다. 말로 하기는 부끄러웠던 말, 그런 단어들을 종이에 눌러쓰며 우리는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등장하기 시작한 한글을 막 뗀 귀염둥이 아들, 딸의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힌 편지는 또 어떻고. 성장하면서 성숙해지고 정교해지는 편지들은 읽으며 오늘도 에너지를 충천한다.
주변에서 바로 받을 수 있는 편지도 물론 소중했지만 편지의 진정한 맛은 기다림에 있었다. 편지를 우편으로 보내고, 잘 도착했는지 궁금해하고, 상대방이 보낸 답장이 도착하기를 바라는 그 기다림만으로도 편지는 너무나 애틋하고 소중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를 보고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건 손 편지를 주고받던 그 시절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 터.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고 편리하게 돌아가는 세상이지만 이 '기다림'이 그리운 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세대로 다 전환되지 못하는 적응력 탓일까. 편지의 주고받음이 아주 오래 걸렸어도 그때의 느린 세상이 나는 더 정겹다. 문자와 메신저로 시시각각 소통하는 요즘 친구들에게 우체부 아저씨를 통해 전달받는 상대방의 마음은 역사책 속에나 등장하는 와닿지 않은 사실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편리해지고 발전하더라도 문자나 메일이 담을 수 없는 손 편지를 나누는 행위는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온라인 기계 글씨가 전달하지 못하는 손글씨가 점점 그리워지는 시대가 올 테니까. 편지는 마음을 보내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