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질문연구소 두 번째 편지
두 번째 편지입니다.
그림을 천천히 꼼꼼하게 봐주세요.
화가들은 그림을 완성한 후 서명을 합니다. '이 작품은 내가 그린 그림이다'라고 표시를 하는 거죠. 여러 서명을 봤지만 조각하듯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쓴 이름은 처음 봅니다. 이 그림을 볼 때 제일 먼저 시선을 머물게 하는 곳이지요. 게다가 'Viva la Vida'가 문구가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이 문구는 스페인어로 '삶이여 만세'라는 뜻이라고 해요. 자, 상상해 보세요. 우리나라 화가가 이런 한글 문구와 자신의 서명을 저렇게 선명하게 써 놓았다고요. 어떠신가요? 그림이 조금 다르게 보이지 않나요? 그림에 텍스트가 등장할 때는 그림 해석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마치 그림책처럼요.
빨강과 초록의 보색대비가 시선을 사로잡지만 아주 싱싱해 보이지 않기도 하지요. 이 그림에는 또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요? 칼로는 왜 수박을 그렸을까요? 여러분은 어떤 질문이 떠오르시나요?
A 선생님: 수박들이 보이네요. 첫인상은 유명한 화가가 그렸다고 보기엔 너무 못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입시 미술학원 복도에도 걸리기 어려운 수준 같다는 생각. 뭔가 수박이 비율도 안 맞는 거 같고, 왼쪽 수박은 너무 익었고 가운데 수박은 말라비틀어진 듯한데 또 글씨까지 써놓고, 오른쪽 아래 수박은 덜 익은 거 같은데 또 장난치듯 잘라진 느낌, 뒤의 수박들도 색이 오른쪽 하나는 너무 덜 익었어고, 맨 왼쪽 뒤 수박은 상처 난 수박을 그대로 표현했네요. 그나마 가운데 수박이 제대로 익어 보이긴 하는데 그저 둥그렇게 그려놔서 입체감 없어 보여요. 뒷 배경은 또 파란색이 뭔가 그리다 만 건지 색이 부족했는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너무 혹평했네요. 예술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그림책 수박 수영장이 잠시 떠올랐어요. 한 여름에 봤다면 더욱 좋았을까요? 봄비가 추적하게 내려서 이불속에서 나오기 싫은 오늘 봐서 이런 평이 나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B 선생님: 오늘 너무 추워서 수박을 보니 해가 쨍쨍한 여름이 그리워지네요. 수박이 그리 맛있어 보이지는 않는데 그게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나고 상처 나고 깎이고 때론 너무 익거나 설익고, 겉은 반들반들해 보이지만 맛은 없기도 하고 상처 난 표면을 지닌 수박이 달고 맛있기도 할 거고요. 저는 이런 생각들을 해보았어요.
C 선생님: '저는 다 다른 모양, 다 다른 상태여도 수박인 것은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D 선생님: 저는 '삶이여 영원하라'라는 문구 때문에 가운데 수박을 둘러싸고 수박의 일대기를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2시 방향의 설익은 수박이 반 시계 방향으로 익어가는 모습, 흠집이 생기고, 속이 곪고, 잘리고, 6시 방향의 수박은 겉 마저 누렇게 변해버려서 못 먹을 지경까지 되었네요. 저 상태가 될 때까지 수박으로 소임을 다하지 못해서인지 누런 수박이 누군가를 상처낼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롭고 뾰족해요. 프리다 칼로의 마음을 표현한 걸까요? 왜 수박을 그린 걸까요?
E 선생님: 처음 딱 봤을 땐 선생님 수업시간에 학생이 그린 건가 했어요. 그러고 나선 시선이 도는데 다양한 수박의 형상들이 있네요. 특히 왼쪽 위는 시점이 다른 것 같기도 하고 배경의 왼쪽과 오른쪽 색이 다른데 왜 그럴까 의문이 들기도 하고요. 과연 이 그림의 스토리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지네요. 얼핏 봤을 땐 관심 없는 그림이었는데 들여다보려고 하니 궁금한 점이 많아 기대되는 작품으로 마음도 바뀌네요.
F 선생님: 저는 7살 아이와 그림 보며 감상을 나눠보았어요. 저희 아이는 ' Viva la Vida '는 글자를 씨로 만든 것 같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림을 놓고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G 선생님: 와~ 저만 마음이 이렇게 가난하고 상상력이 빈곤한가요? 저는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정보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거기에 조금 더 보태면 휴양지에서 시원하고 달콤한 수박 먹고 싶다는 생각? 어쩐지 수박 색깔이 선명하지가 않아서 맛있겠다는 생각은 안 드네요. 오른쪽 뾰족한 수박은 왜 씨가 하나도 없을까요? 수박도 자손을 남기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닐까? 그런 상상을 해봅니다. 위에 선생님 말씀처럼 예술은 참 어렵네요.
<삶이여 만세>, 프리다 칼로, 1954, 캔버스에 유채, 72cm x 52cm, 프리다 칼로 미술관
프리다 칼로는 18살 때 심각한 교통사고로 척추와 골반이 크게 다쳐 이후 평생 수십 차례의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긴 시간 침대에 누워 무료함과 싸워야 했기에 가족은 그녀가 침대 위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특별한 이젤과 거울을 마련해 주었다고 해요. 그녀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고, 점점 그림의 매력에 빠지게 되어 화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멕시코 민중벽화의 거장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해 여러 작품 활동을 했지만, 교통사고로 인한 신체적 불편함과 디에고의 불륜, 세 차례의 유산, 불임 등 고통과 절망은 계속 반복되었지요. 그럼에도 그녀는 붓을 내려놓지 않고 수많은 자화상을 그렸고, 말년에는 과일과 꽃이 등장하는 정물화를 자주 그렸습니다. 프리다 칼로는 1954년 7월 13일,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수박 그림을 그렸습니다.
프리다 칼로는 왜 마지막 작품으로 수박을 그렸을까요? 수박은 멕시코에서 매우 흔하고 사랑받는 과일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처럼요. 과일 중 수분이 가장 많고 달콤하며 붉은색을 띠지요. 겉과 속의 색감과 질감이 매우 다르기도 합니다. 붉은색은 생명, 피, 에너지 등을 상징하지요. 색감과 질감의 대비에서도 상징성을 찾아낼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Viva la Vida'는 왜 적었을까요? 이 문장은 곧 작품의 제목이자 삶에 대한 희망을 남긴 유언이 되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남긴 말이 '비바 라 비다(삶이여 만세)'라는 사실은 깊은 울림을 줍니다. 마지막 순간 까지도 삶의 에너지를 붙잡고 싶었던 그녀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기나긴 고통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화가의 마지막 인사이자 삶에 대한 찬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과연 삶을 얼마나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죽음의 순간 앞에서 그녀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삶은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살아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