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이야기 5
우리 학교는 3학년에 예술 선택 과목으로 미술창작과 음악연주가 개설되어 있습니다. 학생들은 두 과목 중 1개를 선택해 수강해야 합니다. 학기가 시작되면 선택한 과목을 변경할 수 없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변경해야 하는 경우 절차가 매우 복잡합니다.
새 학년이 시작되어 한 달 정도 지났을 즈음, 음악연주에서 미술창작으로 수업 변경을 원한다는 친구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이유인즉슨 아이들이 연습하는 악기 연주 소리를 들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왜 처음에 음악을 선택했냐고 물었더니 악기 소리가 이렇게 자신을 힘들게 할 줄은 몰랐다고 하더군요. 학생과 학부모님의 의견, 교육과정부의 절차를 거쳐 이 친구는 4월부터 제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다 끝낸 컵 조형 수업을 따로 진행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그 친구의 완성 작품과 설명입니다.
< 제작 의도 >
가만히 숨만 쉬어도 공기가 날 노려보는 눈 같고, 수풀이 손 같이 느껴진다. 눈은 마치 구피처럼 하늘을 떠다니며 먹이를 물어뜯고 수초는 한번 잡은 것을 쉽게 놔주지 않는다. 가끔 힘들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작품 설명은 이 친구가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다는 것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면 공기가 자신을 노려보는 것 같고, 풀들이 자기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까요? 그림과 글만 보더라도 오롯이 그 친구의 고통이 저에게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실기활동을 통해 내면의 고통을 드러내며 조금이라도 치유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는 결국 우리 학교에서 고3 과정을 마치지 못하고 다른 대안 고등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초임시절부터 미술심리치료에 대해 관심이 있어 관련 연수를 듣고 민간 자격증도 땄지만 단시간에 끝나는 과정이고 이론수업 위주라 지식을 아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마음속 고통을 드러내는 친구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마음 아픈 친구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니까요.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드라마를 보다 보면 주제곡이 나오는 장면에 병원 환우들이 그린 그림들이 함께 나옵니다. 그중에서 이 친구의 작품과 비슷한 류의 그림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을 상징하는 뒷모습과 불편한 타인이 시선 혹은 알 수 없는 불편한 시선을 표현한 점이 서로 닮아 있었습니다. 비슷한 종류의 마음의 병이 아닐까 짐작해 보았습니다. 여러 그림이 등장하고 주제 음악이 끝나갈 무렵 벽에 붙어 있는 환우들의 그림에 따뜻한 아침 햇살이 비칩니다. 그리고 드라마 타이틀이 함께 등장하죠.
몸이 다치거나 아프면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고 약을 먹는 것처럼 마음이 아파도 약을 먹고 치료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드라마 제목처럼 마음이 힘든 이들에게도 따뜻한 아침 햇살이 비추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