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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아트 Oct 06. 2024

교사동아리 하브루타 1_프리드리히

  3월이 되면 학교마다 교직원 동아리 활동이 시작된다. 운동 동아리, 독서 동아리 등 모임의 리더 선생님들이 메신저를 통해 모집한다. 1인당 2만원의 소소한 동아리 활동비도 지원되므로 대부분 어디든 가입을 하는 편이다. 올해 필자가 맡은 업무 중 교직원 동아리도 있어 안내 쪽지도 보낼 겸 명화 하브루타 회원 모집을 같이 했다. 고맙게도 두 분의 선생님께서 신청해주셨다. 교직생활 중 리더가 되어 그것도 자진해서 무언가를 진행해 본적이 없는 터라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가꿔가고 있다. 구성원은 30대, 40대, 50대 여교사로 이루어져있다. 다음은 우리가 함께 만난 첫 그림이다. 


'동양의 산수화에 서양인을 옮겨 놓은 듯하다. 절벽에 서 있는 뒷모습의 주인공은 지팡이를 쥔채 운해가 가득한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차림새를 봐서는 공식적인 자리에 다녀온 것 같다. 정장에 구두를 신은 불편한 복장으로 산에 오른 이유가 있을까? 곱슬머리는 바람에 의해 엉클어졌고, 알 수 없는 표정은 왼발을 조금 위에 올려둔 진취적이고 당당한 자세를 통해 상상할 수밖에 없다. 화가는 남자의 뒷모습으로 진실을 말하고 있다'


명화 하브루타 참여자 : 라(30대), 민(40대), 희(50대)


1. 그림을 관찰하며 단어로 적기


운해, 바람, 양복, 구두, 지팡이, 절벽, 정장, 당당함, 산수화, 굳센 의지, 상념, 안개


2. 나만의 그림 제목 짓기


남은 먼 곳에, 운해, 미래를 꿈꾸는 자



3. 질문하기


혼자 등산을 하는 이유가 있을까?

구두들 신고 오르면 불편하지 않을까?

머리카락은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을 표현한 걸까?

이 사람은 화가 자신일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운해를 왜 많이 그렸을까?

무슨 계절일까?

양복에 구두를 신고 산에 어떻게 갔을까?

운해는 어떤 의미일까?

바람이 불고 있는 걸까?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으로 그린 이유가 있을까?


4. 생각 나누기


Q1. 머리카락은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을 표현한 걸까?


민 : 머리카락을 단정한 모습으로 표현해도 되는데 바람이 불고 있는 것처럼 표현한 것은 화가가 여기에 무언가 본인의 생각을 담았기 때문이 아닌가 해요. 단순히 이곳의 날씨가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것도 같기도 하고 바람이라는 것을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림 속 주인공의 마음을 씻겨줄 수도 있고 복잡하게 할 수도 있고, 이 시대의 역사적 바람을 상징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희 : 저는 단순히 그냥 바람이 불고 있다는 정도이고 저는 다른 생각보다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그리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라 : 저는 엉클어진 머리가 싱숭생숭한 마음과 상황을 보여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Q2. 왜 운해를 많이 그렸을까?


희 : 자기가 해결할 수 없는 그런 답답함을 운해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해요.


민 : 전통 산수화 기법에서는 운해를 안 그리고 여백으로 비워두거든요. 화가가 이 시대에 동양의 산수화를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운해를 통해 시대의 막막함, 어려움 등을 표현하지 않았느냐는 생각도 들었어요.


 : 저도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시대의 막막함 이런 것들은 본인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잖아요. 자연도 마찬가지이고요. 자연은 조정할 수 없으니까요.


민 : '조정할 수 없다'라는 말도 되게 좋은 말이네요.


Q3. 산에 왜 구두를 신고 양복을 입고 갔을까?


: 높은 산까지 구두를 신고 양복을 입고 올라갔다는 것은 뭔가 대단한 결심을 했거나 아니면 어떤 대단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올라갔을 것 같아요. 아니면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계획에 없던 등산을 하러 간 것일 수도 있고요.


민 : 너무 재미있어요. 이벤트로 올라갈 수도 있다. 공식적인 만남을 하느라 어디서 만났는데 누가 갑자기 산에 올라가자고 한 거지...


희 : 제 상상으로는 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의 추천에 의해서 올라간 거고. 


민 : 그것도 신선한 생각이네요. 산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갑자기 충동적으로 사람들이 좋다는 소리를 듣고 나서 이제 한번 가본 거죠. 되게 설득되네요.


희 : 산에 올라와 보니까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 본 운해 장면인 거죠. 이런 좋은 느낌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민 : 저는 사실 이 사람이 실제로 여기 올라간 것 같지 않은 거예요. 화가가 옷을 갖춰 입은 사람을 자신이 그리고 싶은 풍경에 가져다 놓은 느낌이 들어요. 이런 복장으로 산을 올라갈 수는 없다는 것은 화가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의도적으로 주인공의 복장을 일부러 이렇게 그린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번째 시간에는 똑같은 화가의 다른 그림으로 만났다.




'약간은 어긋난 발, 왼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여인, 어두운 실내와는 대조적으로 맑고 따뜻한 느낌의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나뭇잎 색을 봤을 때는 새싹이 막 돋아나는 초봄이 아닌가 싶다. 좁은 창 위의 통창은 끝을 알 수 없는 높은 천장을 상상하게 만들고 양쪽 기둥의 세로선이 여인을 옥죄어 오는 느낌으로 긴 화면을 강조하고 있다. 단정하게 올린 머리, 벨벳 소재로 보이는 초록 드레스, 분홍빛이 도는 신발이 부유한 집안의 여인이라는 것을 알려주지만, 수직, 수평의 직선이 엄숙한 규율을 중시하는 귀족의 가풍을 상징하는 것 같아 답답하게 느껴진다. 밖에는 배가 지나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돛대가 보여 이곳은 강 가까이에 있는 집임을 알 수 있다. 배는 그녀가 창가에 나와 있는 이유를 알려주는 키워드 같기도 하다. 집의 규모와 꾸민 차림새에 비해 여인은 뭔가 위축된 느낌이 들고, 바르지 않은 자세에서 약간은 불안정한 심리도 읽힌다. 이 답답하고 어두운 실내에 있는 그녀의 유일한 희망은 강을 지나가는 '배'가 아닐는지.'



1. 그림을 관찰하며 단어로 적기


그리움, 왼쪽으로 기울어짐, 물, 돛, 배, 향수병, 삭막함, 그리움, 열망, 기다림, 드러내고 싶음, 목조건물, 사색, 답답함. 감옥, 수도원


2. 나만의 그림 제목 짓기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자유, 향수병, 우리 님은 언제 오시려나


3. 질문하기

어떤 것을 기다리고 있을까?

밖에 무엇이 있길래 내다보고 있을까?

무엇을 보고 있을까?

나무 창문은 더 열 수 없는 구조일까?

집 밖은 호수일까? 강일까?

여인은 울고 있는 것일까?

졸고 있는 것일까?

여인의 손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여인은 책을 읽고 있을까?

왜 몸이 왼쪽으로 기울었을까?

창문 밖 뾰족한 것은 무엇일까?


4. 생각 나누기


Q1. 왜 몸이 왼쪽으로 기울었을까?


민 : 사람의 일반적인 선 자세는 발을 약간 벌리고 안정적으로 서 있게 되잖아요. 그런데 이 여인은 발이 약간 어긋난 상태로 모여 있어요. 밖을 보며 뭔가 생각에 잠겨있는 상황이라 자신도 모르게 몸이 살짝 왼쪽으로 기울어진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요.


 : 저는 자유로움 속에서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처럼 편안한 자세로 보여요. 이렇게 있으려면 사실은 좀 힘을 줘야 하기에 뭔가 흥미로운 것을 보려고 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이런 자세가 된 것이 아닐까요?


 : 저는 돛대가 약간 오른쪽에 있잖아요. 그래서 이 배가 오른쪽에서 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배에 누가 타 있는 거야. 그럼, 그 오른쪽에서 오는 배를 보려면 몸이 약간 왼쪽으로 기울어져야 보이지 않겠는냐는 과학적인 생각이 들었어요.


민 : 와. 그 말이 정말 일리가 있네요.



Q2.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라 : 저는 아까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그런 표정이라고 말씀드렸었는데 좋아하는 사람,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는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사람을 기다릴 때의 표정은 약간 모나리자 입 있잖아요. 그러니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그런 표정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저도 이것이 하브루타의 장점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처음 가지고 있던 그림에 대한 생각이 타인의 의견을 들으면서 조금씩 바뀌더라고요. 밖에 배가 지나가고 있고, 누가 오는지 궁금해서 몸을 기울이는 상태라면 호기심이 어린 표정이 아닐지 생각해 봤어요.


 : 처음에 저는 이게 배인지 진짜 몰랐거든요. 그런데 배라고 아는 순간 스토리가 달라지는 거예요. 저도 돛대가 이쪽에 있고 정박하고 있지 않은 이상은 지나가는 거니까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아요.


 
Q3. 무엇을 보고 있을까?


라 : 저는 처음에 한가로운 오후에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때 창문을 열어서 환기도 시킬 겸 밖 풍경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노란 가을 숲이 보이는 보통 공원 같잖아요. 약간. 그런데 배라고 생각하고 여기가 물이라고 생각하니까 느낌이 달라지네요.


민 : 부끄럽지만, 처음에 이 그림을 볼 때 저도 돛대를 못 봤어요. 제가 그림을 대충 보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하브루타를 시작하면서 질문을 만들어야 하기에 그때부터 꼼꼼히 하나하나 다 살펴보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안 보이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처음에 생각한 것처럼 우울한 느낌은 조금 사라졌는데 이 여인이 이곳에 갇혀있는 느낌은 계속 있어요. 배에서 무엇을 봤다고 하더라도 맞이하러 나갈 수 없고 어떤 세계에 갇혀있는 느낌이에요.



5. 작품의 메시지
 

라 : 저는 이 그림이 약간 오래된 걸로 파악돼서 전기가 없던 시절이라 어둡게 표현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둡다는 게 이 여인이 갇혀 있어서라기보다는 뭔가 정갈한 느낌이에요. 머리도 올렸고, 옷도 엘레강스하잖아요. 신발도 고급스럽고요. 그냥 한가롭고 자유로운데 배가 지나가니까 호기심 어린 따뜻한 시선으로 보고 있는 여인의 밝은 이미지를 그린 것으로 보여요.
 

 : 저도 이 여인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고, 마침 배가 딱 지나가니까 거기에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타고 있지 않을까 하면서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아요. 기다리는 사람의 표정을 상상해 봤으면 좋겠어서 화가가 그녀의 뒷모습을 그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다리는 상황은 똑같을 수 있지만 표정은 좀 다를 수 있으니까요.  


화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


< 작품 정보 >


- 첫 번째 그림 -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1818년 캔버스에 유채, 98.4X74.8cm, 함부르크 쿤스트할레


- 두 번째 그림 -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창가의 여인>, 1822년 캔버스에 유채, 45X32.7cm, 베를린 구국립 미술관


노년의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    출처: 위키백과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는 19세기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우의적(다른 사물에 빗대어 비유적으로 풍자하는) 풍경화로 유명하며 종교적이면서도 인간과 자연의 강렬한 대비가 돋보이는 그림을 주로 그렸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대부분 뒷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왜 뒷모습을 자주 그렸을까? 

  10명의 아이 중 여섯째로 태어난 프리드리히는 어린 시절부터 죽음과 친숙했다. 일곱 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여덟 살에 막내 누이, 열세 살 때는 남동생이 호수에 빠져 익사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이후 둘째 누나의 죽음 등 연이은 가족의 죽음을 겪게 된다. 특히 남동생의 죽음은 위험에 빠진 카스파르 다비트를 구하려다가 죽었다는 언급도 있어 평생 그를 따라다니는 트라우마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들로 인해 프리드리히의 풍경화는 우울한 성향과 짙은 종교색을 띠고 있다.


우리가 그렇게 궁금해하던 이 남자의 복장에 관해 이은화 작가님은 <사연 있는 그림>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림 속 방랑자는 누구일까? 이 남자의 정체에 관해서는 오랫동안 많은 논쟁이 있었다. 얼굴을 알 수 없게 뒷모습으로 그려진 데다, 화가가 직접 밝힌 적도 없어서다. '알트도이체 복장 Altdeutsche Tracht' 때문에 나폴레옹 전쟁 때 프랑스 군과 싸우다 전사한 독일군 장교라는 주장도 있고 머리 모양이 닮아서 화가의 자화상이라는 의견도 있다. 알트도이체 복장은 나폴레옹 전쟁의 여파로 혼란에 빠져 있던 시기, 독일 민족주의자와 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신념을 보여주기 위해 입던 의상이다. 이 그림이 그려지고 1년 후인 1819년에 독일 연방 정부가 민족주의 운동을 금하면서 착용이 금지됐다. 해서 방랑자가 입은 녹색 재킷은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화가의 지지로 해석되기도 한다. 사실 모델의 정체는 프리드리히의 그림에서 전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그는 보편성과 익명성을 부여하고자 의도적으로 인물의 뒷모습을 자주 그렸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는 30대에 화가로서 명성을 얻었지만, 그림 작업에 매진하느라 44세가 되어서야 열아홉 살 연하의 카롤린 보머와 결혼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서는 <해 질 무렵의 여인>, 48세에는 <창가의 여인>이라는 작품으로 아내의 뒷모습을 남겼다. 결혼 초 아내를 그린 그림이 대자연 속에서 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여신과 같은 이미지로 표현했다면, 4년 뒤의 아내의 모습은 어두운 실내에 갇혀 자유를 잃어버린 조금은 위축되고 불안정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Woman in front of Setting Sun >, 1818년 캔버스에 유채, 22X30cm, 에센 폴크방 미술관


  교직원 동아리 선생님들과 첫 하브루타를 할 때 어떤 그림으로 시작할지 고민하다가 고른 2개의 작품이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와 <창가의 여인>이었다. 화가의 자화상으로 추정되는 그림과 아내의 뒷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평생 뒷모습에 천착한 화가에 대한 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었다. 하브루타가 다 끝나고 작품에 대한 정보를 말씀드릴 때 두 그림의 주인공이 부부라고 말씀드리자 매우 흥미로워하셨다. 나도 사실 이번 하브루타를 준비하면서 조사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다.


화가를 남편으로 둔 어린 아내의 외로움, 결혼을 한 이후에도 가족보다는 그림을 더 사랑한 남편으로부터 느끼는 소외감, 이런 것들이 작품의 정보를 알고 나서야 서로 연결되어 보였다. 프리드리히는 이 그림을 왜 그렸을까? 그리고 아내의 뒷모습에 무엇을 담아내려고 했을까? 미안함, 안쓰러움, 고마운 마음의 표현이었을까? 아니면 아내의 뒷모습에서 자신의 고독한 모습을 발견했던 것일까?

모든 것이 확연히 드러나는 앞모습과 달리 뒷모습을 선택한 화가는 어떻게 보면 비겁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림 속 주인공의 표정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인공의 얼굴을 마주하는 대신, 뒷모습을 그림으로써, 감상자의 몫으로 이 모든 진실을 읽어내기를 남겨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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