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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아트 Oct 12. 2024

교사동아리 하브루타 2_김득신

 

  '그전까지 나는 이 그림이 매우 익살스럽다고 생각했다. 날개를 퍼덕이며 소리만 지르는 어미 닭을 대신해 고양이를 잡으려고 허둥지둥 달려드는 주인공 부부를 바라보며 어수선한 현장감을 참 절묘하게 순간 포작했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 난 이후 이 그림을 볼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핏대를 세운 닭의 눈이었다. 눈앞에서 자식이 잡혀가는 모습을 목격한다는 것은 눈뿐만 아니라, 온몸에 피가 솟구쳐 오를 일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그림을 감상할 때 자신의 현재 상황과 경험을 무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림을 확대해 확인해 보자. 인정사정 볼 것 없는 고양이의 눈과 충혈된 어미 닭의 눈이 얼마나 다른가를. 살구나무에 핀 분홍 꽃도 이 상황과 대조되어 슬프다. 내가 요즘 엄마 역할에 몰입한 탓일까?'




 

명화 하브루타 참여자 : 라(30대), 민(40대), 희(50대)


1. 그림을 관찰하며 단어로 적기


모성애, 충혈된 눈, 과거, 시골, 외갓집 풍경, 대낮, 놀람, 재치있는 고양이, 불쌍한 병아리, 긴박함 가운데의 평화스러움, 엄마 닭, 특이한 집 구조, 유쾌함, 평화, 밝은 분위기, 훈장


2. 나만의 그림 제목 짓기


고양이는 병아리를 훔쳤어, 고양이의 반란, 예끼 이놈, 나 잡아봐라


3. 질문하기


주인공 남자의 직업은?

주인공과 고양이와의 관계는?

화가는 이 장면을 왜 그렸을까?

남자의 왼쪽 다리 앞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수탉은 어디 갔을까?

조선시대에 고양이도 애완용으로 키웠을까?

부부만 살고 있는 집일까?

머슴은 없는 집일까?

벽은 왜 뚫려 있을까?

닭은 고양이보고 무슨 말을 했을까?



4. 생각 나누기


Q1. 부부만 살고 있는 집일까?


 : 저는 이 그림에서 하인이나 아이가 등장하면 그림이 산만해질 것 같아요. 구도상으로 봤을 때 주인공 두 사람만 등장시킨 의도가 있는 것 같은데 그 의도 외에도 실제로도 이 부부만 살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자녀가 있다 하더라도 놀갔거나 공부하러 가서 집에 없을 거고, 조선시대라고 다 하인을 거느리는 것은 아니니까요. 몰락한 양반이 아닐까 짐작해 봤어요. 본인들이 직접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발생한 사건, 사고. 이 정도까지 생각해 봤어요.


 : 고양이가 병아리를 한 마리를 물고 갔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놀랄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이 앞에 있는 것이 모자인 줄 몰랐는데 이걸 주인공에게 씌우면 훈장님 느낌이 날 것 같아요. 집 구조도 좀 특이해서 서당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여기 벽은 왜 뚫려있는 걸까요?


 : 그렇게 보니까 그럴 수도 있네요. 원래 본업은 훈장님인데 오늘은 서당이 쉬는 휴일인 거죠. (웃음)


 : 맞아요. 저도 여기가 부부의 집 겸 서당인 것 같아요.


 : 저도 이 집 구조가 특이하다고 생각했어요. 창이 뚫려있지만, 창문이 없는 구조가 조선시대 있었던 것인지 화가가 만들어낸 것인지 궁금하네요.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벽을 뚫어 놓았기 때문에 그림이 조금 더 활력이 넘치는 그림이 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도 들어요. 이렇게 손으로 가려보세요.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Q2. 화가는 이 장면을 왜 그렸을까?, Q3. 주인공과 고양이의 관계는?


 : 재밌었을 것 같아요. 화가가 보기에는, 이 상황이 굉장히 놀랍고 흥분되는 상황인 거예요. 우리가 보기에는 사소한 것이 돼버렸지만요. 이 당시 화가는 이 상황이 재미있기도 하고, 흥분되고, 기록을 해 두고 싶었던 것 같아요.


 : 맞아. 맞아. 그런 것 같아요.


 : 그러게요. 지금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화가가 이 장면을 딱 맞닥뜨렸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오늘날로 치면 사진 찍듯이 그림을 그렸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까 몰락한 양반을 얘기하셔서 그런지 왠지 잘 살고 있다가 뭔가 쫓겨나듯 시골에 내려온 거야. 재산도 많이 없어졌어. 그 와중에 병아리 한 마리를 물고 가니까 화가 나는 거죠. 그런 생각이 조금 들었어요.


 : 화가는 이 상황이 웃픈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닭의 마음에 공감이 되어 조금 더 슬프게 느껴져요. 해학성을 담은 것 같긴 한데 상황은 진짜 슬프잖아요. 내 새끼를 잡아갔다고 생각해 봐요.


 : 저는 이 고양이가 주인이 키우는 고양이 같아요. 이 집에서 같이 지내는.


 : 그런데 어떻게 같이 지내요? 그랬으면, 병아리들이 벌써 다 잡아먹혔을 텐데...


 : 제 생각에는 이 집에서 함께 지내는 동물들인데 주인이 고양이 밥에 대해 신경을 안써주니까 배가 고파 그런 것 같아요. 고양이가 야생성이 있잖아.


 : 만약에 같이 사는 식구라면 그냥 물고 갔다가 어디 놔주면 좋겠다. 배고파서 데리고 간 게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얼굴이 딱 못되게 보여요.


 : 맞아요. 왜냐하면 앞을 보면서 달려가지 않고 얼굴을 돌려 뒤를 보잖아요. 약 올리는 것처럼.


 : 작가가 그렇게 그린 것이 아닐까요? 실제로 고양이가 병아리를 물고 이렇게 뒤를 쳐다봤을까요?


 : 그건 모르죠. 고양이만 알겠죠. (웃음) 선생님 말씀처럼 작가가 의도를 담아 그렇게 표현했을 수도 있겠네요.


 : 그렇죠. 작가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닭 눈 색깔도 그렇고 사실 진짜로 이렇게 빨갛게 되었을까요?


 : 그렇게 생각하니까 진짜 그렇네요. 실제 이런 상황을 화가가 목격은 했지만, 상상력을 더 발휘한 거죠. 이 장면을 아주 정밀하게 연극의 무대처럼 연출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닭의 모성애를 빨간 눈으로 강조하고, 고양이의 교묘함을 뒤돌아보는 것으로, 부부의 병아리 사랑을 몸 개그 등으로 표현하면서 슬프지만 웃음을 유발하는 다양한 메시지를 이 한 장면에 담은 듯 해요.
 


화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


<작품 정보>

《긍재전신첩》중 <파적도破寂圖> 또는 <야묘도추 野猫盜雛>, 김득신, 종이에 담채, 22.4X27.0cm, 간송미술관 소장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은 영·정·순조 대의 도화서 화원이다. 그의 양가는 조선 후기 대표적인 명문 화원 가문인 개성김씨와 신평한씨로, 일찍부터 철저한 교육을 받고 십 대부터 도화서 화원 생활을 시작해 44년 이상을 활동했다. 풍속, 산수, 인물, 영모, 화조 등 모든 장르에서 뛰어난 실력을 갖췄지만, 풍속화의 경우 김홍도의 그림과 매우 유사한 모습이 보여 김홍도 화풍의 영향을 많이 받은 화가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김홍도가 여백을 생략한 그림을 그렸다면 김득신은 주변 배경을 그려 넣어 조선시대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그림 속 이야기 구성을 탄탄하게 만드는 능력이 뛰어났다. 두 화가의 그림을 비교 감상해 보자.


<대장간>, 김홍도 / <대장간>, 김득신



<자리짜기>, 김홍도 / <자리짜기>, 김득신




긴 설명이 필요 없다.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누가 누구의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두 화가의 그림 스타일이 서로 다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쯤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소재인 '자리짜기'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돗자리는 왕골이나 골풀의 줄기를 잘게 쪼개서 만든 것으로 촉감이 시원해 여름에 주로 사용했다. 돗을 '자리'와 '돗자리'로 구분하는 것은 같은 재료를 쓰지만 제조 방법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자리는 날(세로줄)을 고드랫돌(동그랗게 매달려 있는 돌)에 감아 장목에 늘어놓고 골(씨줄=가로줄)을 대어 고드랫돌을 앞뒤로 옮겨가며 엮어 나가는 것이고, 돗자리는 돗틀에 미리 날을 걸어 두고 골을 바늘대에 걸어 넣어 바디질을 하여 짜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리는 날이 밖으로 노출되지만, 돗자리는 날이 속으로 감춰진다. 김득신의 <파적도>, 김홍도 <자리짜기>는 모두 고드랫돌이 보이니 이는 돗자리 아닌 자리 짜기인 것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설명하는 글이 조금 더 쉽게 이해될 것이다.

돗틀 (출처 : 인문정보학 위키)
자리틀 (출처 : 인문정보학 위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는 『그림이 있는 조선 풍속사』 연재에서 양반의 자리짜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자리를 짜는 사람은 사방관을 쓰고 있다. 사방관은 양반이 아니면 쓰지 못한다. 그런데 양반이 웬일로 노동을 하고 있는가. <중략> 토지와 노비가 없으면, 자연히 양반 행세를 할 수가 없다. 한데 조선 후기로 오면서 경제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양반이 속출하였다. 대부분의 양반은 육체적 노동을 기피하였지만, 이 그림에서 보듯 일하는 양반도 있다. 당연히 이 자리는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고, 자리를 짜는 데 생계가 달려 있을 것이다. <중략> 가난한 양반은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짜게 되었다. 하지만 양반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여전히 사방관을 쓰고 있다.


  <파적도>, <자리짜기>를 통해 조선시대 가난한 양반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으니, 기록으로서 그림의 의미도 크다 할 것이다. 카메라가 없던 시절 화가의 붓이 있었기에 이런 생생한 현장을 이 시대의 우리들이 간접경험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활고를 겪으며 한땀 한땀 자리를 짜고 있던 주인공 양반에게 고양이는 고요한 평화를 깨는 아주 고약한 훼방꾼임이 확실하다. 병아리를 채가며 약 올리는 모습에서 주인공은 어쩌면 삶의 울분이 터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못된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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