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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밍블 May 07. 2021

헤어 트리트먼트와 글쓰기

조금만 더 수고롭기

바디로션 바르는 일, 린스를 쓰는 일들은 내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분야였다. 수고스러움에 비해 결과가 신통치 않다고 생각했고 변화를 느낄 정도가 되기 위해서는 미용실에 몇 시간 앉아있을 시간과 돈의 여유를 가져야 가능하다 생각했다.


같은 일반인들은 영양 한번 준다한들 겨우 몇 개월 버티다 예외없이 '머리가 많이 상하셨어요' 라는 멘트를 들었고 또 전혀 몰랐다는 듯 '아,정말요?' 하며 상한 부분을 싹둑 자르는 일 반복했다. 그러니 트리트먼트 해봤자...라는 잘못된 결론에 이르며 어떤 노력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나를 윤기나게 가꾸는 일은 그만큼 시간과 품이 드는 일이었고 효율성과 가성비를 따지다보니 자꾸 뒷전이 되었다.


그런 내가 헤어 트리트먼트를 사용하게 된 계기는 내가 나를 소중히 하지 않으면 나를 찾기 어려운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기계부품이 노후되듯 체력과 능력이 점점 퇴색되는 게 느껴져서 뭐라도 해야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헤어트리트먼트였다. 나이 들어도 볼륨이 죽지 않고 풍성한 머릿결을 가지면 그래도 초라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침 오래 알고 있던 판매자가 헤어제품을 홍보하고 있었고 그녀는 정말 미용실 한번 가지 않고 홈케어를 하는 듯 했다. 힘없는 머리카락을 풍성하게 할 수 있으며 트리트먼트 직후에도 떡지는 머리가 아니라 살랑살랑 바람결에 흩날리는 머리결이 될 수 있다는 판매자의 말이 어쩐지 광고 같지 않았다. 오직 그 제품의 효과는 아니겠지만 고가의 관리 프로그램 없이 제품만으로 가능하다면 그래, 저 여자만큼은 노력해야 내 머리카락에 할 말이 있을 것 같았다.


한 두번 썼을 때는 특별히 달라지는 점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또 손이 가지 않았는데 변화가 없다고 트리트먼트를 노려봐봤자 제품엔 아무 타격이 없었고 내 머릿결만 푸석거렸다. 젊을 땐 린스나 트리트먼트를 쓰지 않아도 아무일이 없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악화되는 나이가 되었으니 내가 귀찮은 수고를 더해야 했다.


내가 산 것만이라도 다 써보자는 생각으로 다시 트리트먼트를 바르기 시작했고 내머리는 영양분을 공급하기 무섭게 쫘악 흡수했다. 매일 트리트먼트를 하고 에센스를 발랐지만 야속하게 내 머릿결은 언제 영양분을 줬냐는 듯 다시 바삭해졌다. 어쩔 수 없다. 그만큼 영양에 배가 고팠던 것이리라. 나는 그것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고 내 할 일을 하기로 했다. 내 할일이란 헤어 트리트먼트를 계속 하는 것. 별거 아닌 습관을 계속 해보는 것이었다.오늘은 트리트먼트를 할까,말까 ? 고민하지 않고 그냥 샴푸 후엔 트리트먼트를 했다. 그렇게 5통을 다 썼다.


린스, 트리트먼트를 전혀 안쓰던 여자가 5통을 다 쓰면 어떤 머릿결이 될까?


'윤기나는 머릿결 만드는 법', '효과 있는 헤어 홈케어' 같은 글을 쓸 만큼은 아니지만 약간의 번거로움을 이겨내니 현재보단 나아지더라..꼭 비싼 헤드스파를 받아야 머릿결이 좋아지는건 아니더라 하는 말을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나는 만족한다. 적어도 내 머릿결을 계속 관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다른 것에도 관심을 두며 나를 가꾸기 시작했으니까.


글쓰기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말도 이 정도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내게 글쓰기란?' 같은 질문에 폭풍 공감 할 만한 이야기를 할 수 없지만 귀찮은 수고를 조금 더 하는 것만으로 어쩐지 내 삶이 반짝 하는 느낌이 들어 계속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쓰는지 그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늘 내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지만 어찌됐든 한번 써보자 하는 마음을 가지니 기분에 따라 위로받고 샆을 때 내 글에서 뒤적뒤적 한 두개 골라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굳이 엘라스틴의 전지현 머릿결을 목표삼지 않듯이 내글이 유명작가처럼 유려하길 바라지 않는다. 이왕 쓰는 거 많은 사람의 공감을 받으면 좋겠다 싶지만 우선 나를 위로하는 것만으로도 괜찮다. 수고로움을 이겨낼 정도만 동기부여가 되면 족하고 댓글이 달리면 좀 더 좋았다. 그만둘 생각만 하지 않으면 내 글은 계속 쌓여가니 그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가끔 햇살받아 광택나는 머릿결을 보며 만족할만큼이면 충분하니까 글쓰기도 그 정도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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