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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밍블 Jun 03. 2021

무엇이 된다는 것의 허탈함

바나나그 다음,을 읽고


그냥 무엇이 이루어지면 행복할 줄 알았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면 행복할 줄 알았고, 1등을 하면 행복할 줄 알았다. 물론 기쁘긴 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 기쁨이 행복으로 이어지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무엇이 된다는 것은 그것이 아닐 때와 그것이 되었을 때 사이에 겪는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결국 그것을 이루고 나면 원인모를 허탈함이 찾아왔다. 무엇이 되기 위해 수많은 희생을 했는데도 말이다.


[바나나 그 다음,/박성호]



대치동 사교육 코스를 밟으며 카이스트에 입학한 저자는 원하던 목표를 이루었지만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느끼며 좁은 세상이 아닌 다양한 경험을 해야겠다며 워킹홀리데이를 떠납니다. 단순히 워킹홀리데이를 하며 느낀 이야기라고 하기엔 꽤 고단해요. 극한의 상황도 자주 발생하고요. 다른 여행 에세이는 나와는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반면 이분의 여행 이야기는 왜인지... 나의 이야기 같고 나라면 어땠을까? 몰입이 되더라고요. 코로나 시국이라 이런 여행 에세이가 더 새롭게 와닿았는지도 몰라요.  간간히 사진이 있어 좋았고 무엇을 가르치지 않고 계속 비워가는 이야기라 또 좋았어요.

아마, 저 부분 때문인 것 같아요. '무엇이 된다는 것은 그것이 아닐 때와 그것이 되었을 때 사이에 겪는 아주 찰나의 순간'이라는 것을 저도 경험했기 때문에요.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이 '행복'이라면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매 순간 행복한 것을 선택하면 되는 게 아닐까? 요즘 특히 많이 하는 생각입니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이 '행복'이라면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매 순간 행복한 것을 선택하면 되는 게 아닐까?



두바이에 있는 동안 사람들과 같은 장소에 있으면서도 저마다 다른 세계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먼지 하나 없이 닦여진 PVC타일이 아프리카의 붉은 토양보다 삭막하게 느껴졌다. 아프리카보다 수천 배는 더 많은 여행자들을 지나쳤지만 누구하고도 대화를 나눌 일은 생기지 않았다. [바나나 그 다음,/ 박성호]




행복의 측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혼자 있는 시간과 함께 있는 시간의 균형인 것 같아요. 혼자의 시간이 충분해지면 사람들과 나눌 것이 생기고 쌓아온 에너지로 나누기도 하거든요. 쌓아두기만 해서도 안되고 방출하기만 해서도 안 되는.  여러 여행지를 거치며 불편함을 많이 겪지만 그래서 오히려 집중하게 되는 게 있잖아요. 나에 대해서라든지, 자연의 위대함이라든지, 사람의 고마움이라든지 요. 그런데 두바이에서 오히려 사람과의 대화가 사라졌다는 것은 지금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스마트폰 하나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더 쉽게 각자의 세계로 문 닫고 들어가는 모습이요. 함께 있어도 외롭다는 딱 그 느낌.

저는 그래서 가만히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꼭 무엇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글자로 내 마음을 꺼내어 보는 거죠. 내 마음을, 타인의 마음을... 여행하는 기분으로요. 금방 식어져 버린 마음이 아니라 은근하게 오래가는 온도로 유지될 수 있게 하나씩, 하나씩. 누구든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내 생각을, 내 감정을 기록해두는 거죠.

저자는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수석졸업을 해서 더 이슈가 되기도 했는데요, 카이스트를 다닌 사람이나 고등학교만 다닌 사람이나, 행복을 원하는 마음은 같을 거예요. 어떤 방법으로 이루느냐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요.

이 책을 읽으며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좋았고(출근길 여행이었어요^^) 내가 가진 것 중 버릴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리고 행복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요. 비슷한 생각을 하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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