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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Jul 07. 2021

매듭을 짓는 자세

끝까지 가봐야 안다.


20대의 저는 그저 취업하는 게 꿈이었어요. 꿈을 꾸기만 하면 어느 날 자연스럽게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될 줄 알았죠. 울기만 하던 아이들이 어느 시점, 두 발로 걷고 말을 하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잡지 속의 멋진 언니가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저~ 방향의 끝에, 당차고 멋진 나를 떠올리면서 그것을 이루는 과정의 나는 생각지도 않은 채 말이죠.

     

아는 것이 전혀 없었으면서 많이 아는 줄 알았던 20대였습니다. 전공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만으로 뭐라도 된 기분이었어요. 기업분석 강의가 좋았고 금융 투자론도 재미있었죠. 회계이론은 싫었지만, 재무분석은 재밌었으니 회계사보다는 애널리스트가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혼자 들떠 있었어요. 애널리스트가 나와 딱 맞는다며 관련 책을 쌓아놓고 정신없이 보던 어느 날, 그들의 출신학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어쩌나요…. 애널리스트는 저와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았어요. 동창회라도 하듯이 하나같이 서울대 혹은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그들의 학력. 어디 대졸이 끝인가요? 공부를 참 많이도 했더라고요. 갑자기 그것만 보였어요. 관심 있던 기업 분석에 대한 내용은 보이지 않고 저자 소개의 출신학교, 학력만 보였죠. 내가 넘볼 수 있는 직업이 아니란 생각이 들 때쯤, 서울대 대학원에서 마케팅을 전공하는 선배가 찾아왔어요. 오호- 우리 학교에서도 서울대 대학원을 갈 수 있구나! 희망이 보이면서 나도 선배와 같은 서울대 대학원 진학을 1차 목표로 삼았습니다.    

 



자기 진단을 잘했고 목표 설정도 적합하게 한 것 같았는데 계획은 곧 무너졌습니다. 왜일까요? 대학원 진학을 위해서는 영어시험인 TEPS 공부를 했어야 했는데 저는 또 그 영어 교재를 쌓아 놓는 행위에 만족하고 있었어요. 나는 정말 대학원 진학이 간절한지, 내 점수가 얼마가 나올지 마음속 동기와 현재 나의 상태는 진단하지 않고 '무언가를 하고 있는 나'에 만족하는 거였어요. 20대에는 내면의 동기에 맞추어 나의 노력을 투입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동기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어떻게 해야 매듭을 지으면서 나아가는 건지도 알 수 없었죠. 그저 내가 공부하는 분야에서 남들이 멋지다고 하는 직업으로 목적지만 설정하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나의 동기와 그에 맞는 노력이 투입되지 않은 채 타인의 기준에 맞춰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그러니 무슨 공부를 더 하냐며, 그냥 취업이나 하라는 엄마의 한마디에 어설프게 지은 바닷가 모래성이 쉽게 쓸려갈 수밖에요.


'역시 무리였어. 그냥 지금 조건으로 금융권 취업에 도전해볼까?' 했지만 결국 금융권 취업에도 도전하지 않았어요. 떨어질 것 같았으니까요. 틀림없이 떨어질 것 같은데 자존심 상하고 싶지 않았어요. 똑같은 자기소개서를 모두가 알만한 대기업 지원서에만 복사-붙여 넣기 하고 있으면서 자존심을 챙기던 20대였습니다. 20대의 저에게 지금에서야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너는 정말 금융권 취업을 원했어?'     


애널리스트가 되고 싶었다면 직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 뒤에 정당한 노력을 더 해야 했어요. 최소한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고 스터디를 하거나 하는 등의 열심이요. 학벌이 문제라고 생각했다면 엄마의 한마디에 종이접기 하듯 꿈을 접을 게 아니라 대학원 진학을 해야 했고요. 엄마 탓을 하던 때도 있었는데 사실은 나의 열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내 탓이었습니다. 타인의 기준과 평가가 아닌 내가 즐겁게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찾지 못했던 거죠. 관련 공부가 재미있긴 했으나 그것에 따르는 노력을 감당할 만큼은 분명 아니었어요. A, B 중에 A가 좋으니 나는 세상에서 A를 제일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B를 가장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것뿐이에요.      

                  

이럴 때면 저는 학생들에게 공부는 쉽고 어렵고의 문제가 아니라 매듭을 짓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해줍니다. 어떤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그것을 내가 할 수 있는지 신중하게 판단하고, 그것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으면 끝까지 가보는 연습을 해보라고요. [라틴어 수업, 한동일]


내가 과연 A를 제일 좋아했는지 알아내는 방법은 한동일 교수님 말씀처럼 매듭을 짓는 자세로 끝까지 가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쉽게 시작하고 쉽게 접어버리는 패턴을 반복하다간 나의 결정에 자신이 없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내가 끝까지 가보지 않은 길에, 한 번도 매듭을 지어보지 않은 일에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 우리 매듭을 지어 봅시다! 매듭이 꼭 그럴싸할 필요는 없어요. 단지 내 결정과 노력에 걸맞는 마무리를 해주는 거예요. 이런이런 동기로 시작한 일이 나의 방향과 맞지 않아 마무리를 하겠다는 내 결정에 대한 명확한 선언이요. 내가 기울였던 노력에 대해 혹은 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마음에 대해 알아주고 정리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한 매듭이  될 거라 생각해요


매듭은 공부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순간순간에 꼭 필요한 습관인 것 같습니다.

20대에 짓지 못한 매듭을 저는 30대 후반 자격증 공부를 하며 마무리를 했어요. 애널리스트가 되려고 그런 것은 아니고 내가 정말 이 공부를 하고 싶어 했는지 여전히 그러한지 궁금했거든요.


 

결론은? 공부와 현실은 다르다는 것과 제게 충만함을 가져다주는 분야는 아니였다는 것을 알게 됐죠. (공부할 것도, 책임질 것도 많은데다 직업적으론 제가 알지 못하는 부분이 너무 많으니까요)  대신 저는 다른 내면의 동기를 찾아보기로 했어요. 어쩌면 삶은 계속해서 충만함을 찾아 떠나는 여정인 것 같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작은만족을 따라 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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