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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Jun 16. 2021

오늘의 일당만큼 , 딱 그만큼


“00이 습득력이 빨라요. 씩씩하게 잘해. 이해도 빠르고, 눈치도 빠르고.”     


출장을 다니며 새로운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하는 상사의 이야기에 부끄러우면서도 자연스럽게 어깨가 펴졌다. 상사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이후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내 목소리의 힘이 결정됐다. 누구냐고, 오래 휴직한 감 없는 직원은 관심 없다는 태도에서 이제는 일이 할 만하냐고, 일이 많은데 힘들겠다고 뻔한 말이라도 건네주는 사람이 많아졌으니까.


복직한 지 3개월이 되었다. 엄청 오래된 것 같았는데 3개월밖에 안 되었다니. 한 달은 파견도 다녀오고 앉은자리에 적응도 하느라 하루하루가 힘들었고 한 달은 일을 알아가는 자체가 두려워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서도 걱정하느라 힘들었다. 아마 내 생각의 무게를 잰다면 3분의 2는 걱정이 차지할 게 틀림없는데 직장 생활 10년이 넘도록 걱정만 많은 모습이 부끄러워 하나씩 부딪혀보기로 했다.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없었고 막상 부딪혀보니 관성에 따라 해결되는 일들도 많았다. 단계별로 나아짐을 겪고 난 이후 한 달은 내가 적응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다양한 일들이 와르르 쏟아지는 시기였다.

  

쏟아지는 일에 솔직히 덜컥 겁이 났지만 최소한 근무시간 내에 할 수 있는 일들만이라도 해보자며 차근차근 미션을 완료해갔다.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았고 급박한 일은 바로바로 대처하면서 뜻밖의 상사의 칭찬과 신뢰를 얻었다. 결재를 올릴 때마다 꼼꼼히 확인하던 때를 지나 ‘아주 완벽히 잘했어!’라는 추임새를 들으며 한 번에 통과되는 때를 맞이했다. 출근하자마자 내 이름을 부르며 엄격한 목소리로 굳이 할 일을 찾아주시던 상사가 이제는 커피부터 마시자고 나를 부른다. 낯선 곳에서 다시 자리를 잡았고 일이 많든 적든 감당할 만한 사람이 되었는데 칭찬을 들을수록 묘하게 편이 갈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보기엔 자기한테 이례적으로 잘해주고 계셔. 누구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걸 처음 본다니까?”     


처음 내가 왔을 때의 부담은 아무도 몰랐다. 굳이 불려 가서 기대가 된다느니 실망이라느니 자기들 마음대로 나를 들었다 놨다 하던 상황을 안다면 그것도 지금과 같은 '이례적'인 대접이라 말했을까? 휴직을 오래 해서 긴장감이 없는 것 같다느니의 일장연설을 들었던 상황은 아무도 몰랐으면서... 내가 이례적인 대접을 받고 있다니.! 나는 그만큼 특별한 사람이 아닌데 왜 다른 대우를 받고 직원들은 왜 나를 신경 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고민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직장에서 나는 누구와도 잘 맞추는 사람이었다. 업무적으로는 늘 내가 1.5배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인간적으로는 어차피 내 인생에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니 직장에서만은 얼마든지 맞춰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상사든 몇 번 화내는 패턴을 발견하면 최소한 불똥은 피할 수 있었다. 걱정이 많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이라 오히려 직장생활을 잘했다. 눈치를 잘 보고 상황 파악을 빨리했으니까. 그런데 그 과정이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녔다. 늘 내가 1.5배를 하는 것은 힘에 부쳤고 알아주지 않으면 부아가 났다. 어차피 내 인생에 중요하지 않은 사람인데 왜 맞춰줘야 하는지 막 나가고 싶은 순간이 자주 찾아왔다. 그래서 복직을 마음먹을 때 이제는 누구에게 맞추지 말고 내 업무의 경계를 정확히 지키자고 생각했다. 처음 하는 업무니까 최대한 공부를 많이 했고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잘 배우려 애썼다. 말 그대로 나는 내 업무를 열심히 했을 뿐인데 이제는 또 칭찬받는 것이 문제인 상황이 된 것이다.

성격까지 좋아 보이려고 한다는 말에 당시의 난 펄쩍 뛰었던 것 같다. 아니 싹싹하게 해도 난리야.

[익숙한 새벽 세시, 오지은]


예전 같으면 무슨 칭찬을 받아요…. 손사래를 치면서 실은 나도 아주 무서워서 눈치를 보고 있다고 모두의 평화를 위한 변명 아닌 변명을 구구절절 늘어놓았을 거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누구에게 맞춘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니까. 우린 딱 맞는 퍼즐이 아니고 내 모양이 어떤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불완전한 존재이니까. 이번만큼은 눈치를 보지 않으려 한다.


욕먹고 칭찬을 받고 그건 내 본질과 전혀 상관이 없다. 일을 하다 보면 누군가에겐 좋은 일이, 누군가에겐 안 좋은 일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오늘은 칭찬을 받지만 내일은 욕을 먹을지도 모르고. 그냥 매일의 부침은 어디에나 있다. 그것뿐이다.



그러니 그냥 오늘의 일당만큼 일했으면 일도 신경도 딱 끄고 퇴근!


출처: 일개미자서전(글: 구달), 그림(임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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