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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Jun 27. 2021

좋은 상사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그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늘 좋은 선배가 되는 것에는 자신 있었다. 맛있는 것을 사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는 것은 내게 의미 있는 즐거움이었으니까.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직장 선후배와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할 수 있었고 누구의 무슨 이야기든 들어줄 수 있었다. 사람들이 꺼려하는 사람과도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잘 지내왔으니까 누구보다 좋은 관리자, 친절한 상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나 같은 상사는 어떨까?' 하는 질문에 자신이 없어졌다.

내가 처리해야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아는 업무가 많아질수록 시야가 넓어지면서 말이 없어졌다. 한눈에 파악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불필요한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왜 안 해도 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왜 효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하지 못할까?하는 생각으로 동료나 다른 직원을 신기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런 생각이 들 때 나서서 도와주면 될 텐데 바라만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 나는 좋은 상사가 되긴 글렀다,
깨닫는 순간.



신입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팀장님의 태도가 있다.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어쩐지 웃는 느낌이 안 드는 얼굴, 함께 걷고 있어도 누구와 걷고 있는지 모르겠는 애매한 거리 둠, 매사에 깔끔한 성격에 관계에도 선을 잘 지키시는 분이구나 했다. 좋으신 분이지만 나와 친해질 수 있는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내 모습이 그랬다. 휴가를 내겠다는 말도 몇 번이나 연습해서 하던 사람이 나였는데 '정치적'이라고 생각했던 반응이 나의 것이 되어 어느덧 '회사 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행동들을 변명하지 않았다. 굳이... 뭐...


내가 생각한 좋은 상사란 적절한 거리를 지키면서 어려운 일은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잘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사사건건 간섭하지 않으면서 어려운 상황에 '홍반장'처럼 어디선가 나타나기엔 나의 일이 만만치 않았고, 상대를 늘 주시하고 있다가는 서로가 스트레스받을 게 분명했다. 결국 나는 희미한 미소를 띤 채 애매하게 거리를 두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해요.”

해줄 수 있는 것은 이 문장 하나였다.     

어딘가 뒤로 내빼는 듯한 말이었지만 진심이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호의를 보이는 것이고 나머지는 상대를 믿는 것이다. 나와 다른 방식이지만 결국 자신만의 효율성을 찾아낼 것이라는 믿음, 나와 속도가 다르지만 자신의 속도를 찾아 완성해 낼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직장에서만 필요한 마음은 아니다. 가정에서도,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적용되는 말이다. 상대의 능력, 나와 다른 속도를 존중하는 마음.  


모르는 척, 혼자 해결하길 뒷짐 지고 바라보는 것과 상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의 차이가 무엇일까? 중간중간 일의 진행됨을 알아주고 물어봐주는 것일까? 사실 나도 아직 모르겠다. 다만 갑자기 지금 내 모습이 좋은 관리자의 모습일까 점검해보고 싶었다. 깔끔하게 내 일만 잘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모습이었나?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 좋은 상사라는 평가를 듣는 것이 나의 목표였나?  모두가 행복했으면 하는 이타주의의 마음이었나?


지금 그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한 번쯤 생각해보고 싶은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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